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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똑똑하다 - 유혹하고 사냥하고 방어하는 식물 ㅣ 과학과 인간 2
폴커 아르츠트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 식물은 똑똑하다 】 : 속이고, 공격하고, 방어하는 놀라운 식물의 세계
_폴커 아르츠트 저/이광일 역 | 들녘
1.
식물이 동물보다 똑똑하다는 말을 들으시면 반응이 어떠실지 궁금합니다. 피상적인 생각으론 동물은 동(動)적이고, 식물은 정(靜)적인데 어찌 그런 논리가 적용될까 의구심도 듭니다. 그러나 그런 편견을 없애고 식물 역시 호흡을 하며 아무리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생명체라고 받아들인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식물의 품위(?)가 격상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2.
이 책의 저자 폴커 아르츠트는 독일의 유명한 과학 저술가이자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과학 다큐멘터리 작가로 소개됩니다. 동물과 자연을 다룬 각종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 감독했고 책도 여러 권 썼군요. 그 중 『동물도 의식이 있을까?』라는 책은 스테디셀러라고 합니다.
3.
식물은 동물보다 하등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이 영양을 섭취하고 번식하는 능력은 있지만 동물과 달리 주변 환경을 지각하고 거기에 반응하는 능력은 없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4.
저자는 식물은 생명 활동에 중요한 모든 것에 반응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날씨는 물론이고 땅의 상태나 이웃한 식물들에 대해서도 반응한다고 합니다. 색깔을 구별하고, 장애물을 회피하거나 다른 대상이 접촉하는 것을 감지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손끝으로는 도저히 감지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식물은 남이 자신을 잡아먹거나 해치려 하는 것을 느끼고, 세련된 방어 전략을 응수하기도 한답니다.
5.
《식물은 똑똑하다》 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가 우여곡절 끝에 제작 결정을 내려진 후 무심코 냉장고 문을 연 저자는 싱싱칸에 넣어 두었던 양파가 싹이 나기 시작하는 것을 본 후 생각의 뿌리가 자랍니다. 양파의 하얀 새싹 다발과 여린 줄기를 보며 “어떻게 저렇게 위로 뻗어갔을까? 빛을 향해? 아닌데, 냉장고 안에는 빛이 없잖아.”
6.
이 부분(식물의 공간과 중력 감각)은 과학자들이 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하는군요. 전혀 밝혀지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이미 백여 년 전 식물학자들은 뿌리 끝에 있는 특정 세포에서 녹말로 된 작은 알갱이들을 발견했지요. 이를 보통 녹말립(綠末粒)이라고 부르는데 이 부분을 통해 식물들이 평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평형석(平衡石)이라고도 합니다. 이 과정에 대한 좀 더 정밀한 관찰을 위해 물풀이 에어버스(포물선 비행을 통해 무중력 상태를 연출하는 특별한 비행기)를 타는 호강을 누리는군요.
7.
이어지는 이야기는 좀 더 리얼합니다. 육식식물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실제로 있답니다. 곤충이 간식거리라고 합니다.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의 벌레잡이통풀은 한 시간 동안에 흰개미를 무려 6.000마리를 잡아먹는답니다. 대단하지요? 이 식물은 항아리 모양의 포충낭에 소화액을 채우고 먹잇감을 기다립니다. 조급할 것은 없지요. 그저 그 식물들의 어느 부분이 미끼 역할을 해서 흰개미들이 '오기만 해!'하고 기다리는 것이지요. 조급한 행위를 하는 것은 동물들뿐이지요.
8.
식물의 방어력 부분에선 어떤 야생 감자종이 무대에 오릅니다. 이 야생 감자는 특별한 무기로 진딧물에게 대항하는군요. 치명적인 무기는 아니지만 효과는 그만이라고 합니다. 이 감자는 이파리 표면에 작은 가시가 있는데, 분비샘과 이어져 있는 예민한 섬모로 진딧물이 그 위를 밟고 지나가면 바로 부러집니다. 그리고 진딧물은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섬모에서 두 가지 물질이 솟아나와 서로 합쳐져서 끈끈액(점액)이 되기 때문이지요. 이 접착제 같은 액체가 진딧물의 발에 닿으면 진딧물은 발을 뗄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인간이 개발해내는 전쟁무기와도 같은 기능이 이미 그들에게 있군요.
9.
식물의 번식. 저자는 '원격 섹스'라는 타이틀로 호기심을 유발시키는군요. 마치 식물들이 무언가 곤충을 꾀는 물질을 방사하듯이 말입니다. 식물이 섹스를 한다? 저자가 제작한 난초 관련 TV 다큐멘터리를 본 한 시청자가 외설적인 장면이 무려 96회나 나왔다고 항의했다고 합니다. 아마 대단한 난초 애호가였던 모양입니다. 그 고결한 난초에 외설 장면이 그렇게나 많이? 그 시청자 참으로 대단하군요. 그 다큐멘터리를 3번이나 보면서 문제가 되는 장면을 꼼꼼히 잡아냈다고 하네요.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지만, 꽃은 식물의 생식기지요. 꽃은 수컷 성세포를 가진 꽃가루를 공급합니다. 꽃가루가 식물의 정액이라는 표현도 합니다. 바람에만 의존하기엔 생존력이 약해지니까 곤충을 이용하게 됩니다. 이 과정 중에 식물은 나름대로 잔머리를 쓰게 됩니다.
10.
이외에도 저자는 뿌리들의 전쟁, 식물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동물의 신경 시스템 대신 전기 신호를 발사한다던가,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 애쓰는 과정(모험)을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필체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비록 식물이 동물보다 똑똑하지는 못할지라도, 동물만큼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군요. 현대를 대표하는 식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언 볼드윈의 말을 옮기면서 리뷰를 마무리 합니다. “문제는 식물이 똑똑하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식물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똑똑하냐 그렇지 않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