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 2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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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2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저/손화수 역 | 한길사

         원제 : Min Kamp 2

 

2008729올 여름은 유난히 길다. 가을이 오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지난 626, 나는 나의 투쟁1권 집필을 마쳤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방학을 맞아 온 가족이 휴가를 떠난다. 작가는 휴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휴가의 필요성을 못 느꼈지만 어쨌든 아이들 덕분에 휴가를 가게 된다. 일주일 예정으로 갔지만, 사흘도 지나지 않아 다시 짐을 싸들고 돌아왔다. 그의 가족은 휴가가 아니라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나의 투쟁1권에 이어 2권에도 작가의 세밀한 기록이 이어진다. 좋은 감정이고 안 좋은 감정이고 그냥 모두 실려 있다. 2권의 주제는 사랑, 결혼 그리고 육아에 대한 내용이 많이 담겨있다. “너무나 많은 시간, 너무나 많은 날, 끊임없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경험해야 하는 일들. 하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일은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많지 않다.” 그래서 그런가? 작가는 그의 일상을 철저하게 기록한다. 아마도 이 땅에서 그의 삶이 다할 때까지 그의 삶, 그의 생각을 담아 놓을 작정인 모양이다.

 

시간을 되돌려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게 되면 눈에 보이는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뿐이다. 현재의 삶이 만족하지 못하거나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들은 자주 과대망상 환자나 머저리로 간주되기 일쑤다. 어느 쪽으로 간주되든 자기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는 현실을 혐오한다. 현재의 삶이 무의미함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던 그에게 현재 그의 아내 린다를 만난 그해 봄, 세상은 그의 앞에서 활짝 문을 열었고, 삶은 엄청난 속도로 강렬해졌다고 고백한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사랑에 빠졌던 그는 세상의 온갖 것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했고 주변의 모든 것을 활짝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며 기쁨과 즐거움을 주체할 수 없어 감정이 폭발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 사랑의 위대한 힘이여.

 

린다에게 사랑을 고백해야 했다. 자신의 마음을 전해야했다. 세미나 마지막 날, 일종의 종강 파티가 열렸다. 어쩌다보니(의도적인 상황이었겠지만)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있게 되었다고 한다. 와인 코르크를 열려던 린다는 미소 띤 얼굴로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그의 손을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그는 순간 착각에 빠진다. 그녀도 나를 좋아하는구나. 파티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간, 머리끝까지 취해 있던 그는 린다를 밖으로 불러냈다. 해야만 하는 말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말을 해버렸다. 그가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해야 했다. 사랑을 고백했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매우 안 좋았다. 그녀는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사랑의 첫 고백은 거절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보다 그의 친구에게 관심이 있다고 답한다. 그러나 그의 친구는 애인이 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가 한 행동이 소상하게 적혀있다. 과연 이렇게 소상하게 그려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나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캄캄한 터널을 걷는 것 같았다. 건물 밖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지나쳐 내 방으로 들어온 나는 책상 위에 있는 노트북에 이어져 있는 전선을 확 낚아챈 후 노트북을 닫고 욕실로 들어갔다. 세면대 위에 있는 유리컵을 집어든 나는 벽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던졌다. 혹여 옆방에 있는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한동안 숨을 죽이고 기다려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나는 깨진 유리 조각 중 가장 큰 것을 집어 들고 거울을 보며 얼굴을 그어대기 시작했다. 가능한 한 깊은 상처를 남기기 위해 기계적으로 온 얼굴을 그어댔다. 턱과 양 볼, 이마와 코, 턱에 이르기까지 한 군데도 남기지 않고, 흐르는 피를 수건으로 닦아가며 유리 조각으로 얼굴에 상처를 남겼다. 긋고 닦기를 수차례 계속한 후 그제야 나는 만족할 수 있었다. 얼굴에 단 한 줄도 더 그을 만한 틈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나는 마침내 잠자리에 들었다.”

 

이 대목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라는 존재감은 섬뜩하다. 뭔 일을 저지를지 모를 인간형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1권에 이어 2권에 기록된 그의 삶과 생각은 결코 가볍지 않다. 매우 철학적이면서 현실적이고, 깊은 사려감이 배어있다. 그의 기록은 그가 쓴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그를 바라보며 쓴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질 정도로 냉정하고 리얼하다. 아마도 이러한 점이 그의 글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동기부여를 주지 않을까? 그래 나도 그런 적이 있었어. 나도 그러고 싶은 적이 있었지만, 생각뿐이었지 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자해의 아픈 상처가 있은 후,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삶은 계속된다. 린다와의 행복한 순간, 감정이 서로 엉키는 시간들에 대한 기록도 이어진다. 중국의 <중화독서보>나의 투쟁에 대해 인생 역정에서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한 개인의 수치와 곤궁을 그려나간다고 평했는데, 지극히 공감이 간다.

 

소설이 아닌 그의 삶의 이야기. 아니 소설 같은 삶. 불쑥불쑥 일어나는 감정조절 장애까지도 그는 남 이야기 하듯 적어간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린다에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있는 힘을 다해 유리잔을 벽난로 속으로 던져버렸다. 이상하게도 유리잔은 깨지지 않았다. 젠장. 난 말다툼을 하고 그릇을 깨부수는 고전적인 행위조차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었다.”

 

 

#나의투쟁2    #칼오베크나우스고르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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