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 1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 나의 투쟁 (1) 】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 한길사

 

 

1.

심장의 삶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힘이 다할 때까지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다 멈추어버리면 되니까.” 이 책의 도입부분이다. 마치 메디컬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죽음은 생명이 완전히 꺼져버릴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 몸속으로 서서히 쳐들어온다.”라는 표현도 눈에 들어온다. 뒤이어 의학적인 설명이 이어진다. 죽음 또는 시신을 바라보며 묘사하는 대목들이 매우 차갑다. 하긴 죽음은 체온이 상실된 상태이긴 하다. 죽음을 두 가지 체계로 설명하는 부분은 매우 철학적이다. 묵직함과 비밀스러움, 흙과 어둠 그리고 그 이면에는 가벼움과 개방성, 밝음과 유동성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나온다.

 

2.

어느 봄날 저녁, 소년의 아버지는 정원을 손질하고 계셨다. 여덟 살 소년은 혼자 거실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었다. 북극해 연안에서 한 고기잡이배가 가라앉았다. 선원 일곱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는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 사고 당시 날씨는 화창했고, 바다에는 큰 파도도 일지 않았다. 선박에서는 SOS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뉴스에선 사고 현장인 텅 빈 바다 위를 맴돌며 조사하는 헬리콥터가 화면에 나왔다. 잔잔하고 묵직한 바다에는 간간이 하얀 거품을 만들어내는 파도만 보였다. 소년은 화면 속의 바다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 하나가 수면 위로 불쑥 솟아올랐다. 불과 몇 초 동안이었다. 하지만 그 몇 초의 경험이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3.

여덟 살 유년의 기억을 시작으로 가끔의 현재와 대부분의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의 나이가 아직 젊기에 자서전이라고 부르기엔 이르다. 그저 독백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진솔한 고백록이다. 책 제목 나의 투쟁을 보면 대단한 전사(戰士)같다.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을 이름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오버랩 된다.

 

4.

예상과 달리 책에서 투쟁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오는 대목이 생뚱맞다. 전업 작가로 자리 잡은 저자의 일상이다. “내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집안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저녁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장을 보고,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잠자리에 들기 까지 돌보는 일? 젖은 빨래를 말리고, 옷가지를 잘 접어 옷장에 차곡차곡 넣고, 정리를 하고, 탁자와 의자, 벽장을 닦는 일. 이건 투쟁이다. 비록 영웅적인 투쟁이라 할 수는 없지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 치워도 치워도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방, 눈을 뜨고 있는 한 한도 끝도 없이 뒤를 따라다니며 돌봐주어야 하는 아이들 등 내 힘으로 넘어설 수 없는 어떤 지배적인 것들에 맞서는 투쟁인 것이다.” 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전업 주부(主婦), 주부(主父)던 간에... 하긴 이미 우리는 수많은 상황에 전쟁을 붙이고 있다. 육아 전쟁, 교육 전쟁, 살과의 전쟁, 때로는 전쟁 같은 사랑. 그 전쟁터에서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무릎을 꿇고, 피를 토하고, 장렬히 전사하기도 한다. 개인에겐 투쟁맞다.

 

5.

유년의 기억을 넘어, 청소년기로 들어선다. 이성에 눈을 뜨는 시기에 일어나는 일상의 묘사는 참으로 리얼하다. 아슬아슬하게 그 시기를 넘긴다. 책 표지 안쪽에는 거의 2미터에 육박하는 키의 소유자인 저자의 브로마이드가 실려 있다. 깊게 패인 주름살, 세련된 턱수염, 전사(戰士)와 같은 인상적인 눈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지만 그는 아직 젊다. “내가 본 것은 삶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죽음이었다.” 삶과 죽음의 자리가 바뀌었다는 생각도 든다. “삶에서 내가 배운 한 가지 교훈은 참고 견디는 것이며, 삶에 대해 질문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니 내 속에서 서서히 싹이 트고 자라나는 동경과 온갖 감정은 글로 풀어낼 수밖에 없다.”

 


6.

참으로 묘하게 끌어당김이 있는 책이다. 저자는 특별히 자신을 미화(美化)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부족하고 어수룩한 모습, 갈등하는 마음, 저질렀던 실수 등을 마치 저자 자신을 또 다른 가 바라보듯이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주관과 객관이 함께한다. 뭔가 큰일을 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계속 바라보게 만든다. 저자의 나이 40에 유년의 기억을 시작으로 과거의 자신을 불러들여 세밀화를 그린다. 그가 걸어 온길, 그의 생각이 의식의 흐름처럼 진행된다.

 

7.

이 책은 저자의 조국인 노르웨이에서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었다. 전업 작가인 저자 크나우스고르는 나의 투쟁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으로 갈라진다. 책은 총인구 500만 명인 노르웨이에서 5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성인 대다수가 읽었다고 봐야한다. 그 후 전 세계 32개국에서 연이어 출간되었다. 현재 국내에선 나의 투쟁2, 3권을 10월 초부터 만나 볼 수 있다.

 

8.

이 책에 쏟아지는 세계 각지의 유력 언론들의 극찬도 이채롭다. 미국 평단은 나의 투쟁2012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까지 올렸다. 솔직히 뭘 그렇게까지...”하는 마음도 든다. 그러나 떨궈버릴 수 없는 생각은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저자가 그린 세밀화 어디쯤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림이 추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화(寫實畵)라서 그렇다. 세계 각지의 수많은 언급 중에서 인포르마시온 (덴마크)의 코멘트에 콜이다. “노르웨이 독자들이 이 야심적인 작가에 대해 경외심을 느끼며 무릎을 꿇는 이유는 그의 진실함 때문이다. 그의 문학적 스킬에 아무런 꾸밈과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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