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 - 탁재형 여행 산문집
탁재형 지음 / 김영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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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 】      탁재형 / 김영사

 


1.

수첩을 덮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가봤지만 기억나지 않는 장소들을 떠올린다. 만났지만 희미해져버린 사람들을 생각한다. 기록되지 않아 존재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2.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타입이 있다. 오롯이 여행을 즐기는 사람과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주기 위해 여행을 하는 사람. 이 책의 지은이 탁재형은 후자이다. 세계테마기행PD이자 오지 전문 여행자, 같은 제목으로 책을 출간하기도 했던 PD의 여행수다진행자 탁재형의 세 번째 책이다.

 

3.

전작 PD의 여행수다와 달리 지은이는 여행의 길에서 얻은 단상들을 좀 더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내면의 향기를 흠뻑 느끼는 글들이다. “비가 싫었다. 15년 가까운 시간 동안, 두 달에 한 번은 길 위에 있었다. 여행일 때도 있었지만, 여행이라 부르기 힘든 때가 더 많았다. 목적이 분명한 여행, 해내야 하는 과업이 있는 여행. 돌아다님으로써 생계를 잇는 자의 관점에서, 비는 방해꾼이었다.” 그렇지만 비가 싫은 진짜 이유는 비 자체가 싫은 것이 아니라, 비를 피할 시간과 공간이 불편했던 것이다. 생각을 고쳐먹는다. “비를 피할 곳을 찾다가 우연히, 당신과 만나는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4.

여행을 통해 얻어지는 장점 중에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내가 갖고 있던 주변인물들에 대한 정체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랄프라는 인물. 그는 오래 된 미니버스를 몰고 2년째 여행 중이다. 차를 몰고 유럽을 가로질러 스페인으로, 그리고 카페리에 싣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넜다. 그리고 계속 남쪽으로 달리고 있다. 그는 꽤 여러해 전에 역시 훌쩍 떠나고 싶은 병 때문에 아프리카 종단 여행 중 척추 손상을 받았다. 아직은 불편한 몸으로 또 다시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다.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어떤 것을 한다는 것은..” 운명 같은 것이다. 타인에게 굳이 이해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렇게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5.

크레타 섬에 가선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그리스인 조르바를 생각한다. 조르바를 연상시키는 어부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아니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은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지은이는 크레타 섬의 어부를 생각하며 덧붙이고 싶다. “나는 내 시간의 주인이다. 나는 자유다.”

 

6.

반복되는 일상에도 변수는 존재한다. 하물며 여행에서는 오죽하랴. 마추픽추. 페루 쿠스코시의 북서쪽, 안데스 산맥에 자리 잡은 잉카 문명의 고대도시. 산 아래쪽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아 공중도시라고 불린다. 그곳에서 마추픽추를 촬영하고 다시 나와야 하는데, 기차가 파업이란다. 대안이 없다. 걸어서라도 교통편이 연결되는 곳까지 가야한다. 철로를 따라 무작정 걷는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그냥 이곳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여태껏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가이드가 지은이의 마음에 일어났던 한 바람을 잠재운다. 그 도움이 별로 반갑지 않다.

 

7.

지은이는 여행을 그물 드리우기또는 그물 던지기로 표현한다. 거기엔 반드시 무엇이든 걸려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물을 쳐놓은걸 잊어버려도 상관없단다. 하긴 여행 자체에서 무언가를 꼭 얻어야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지혜도 필요하다. 우리의 일상이 매일 무언가를 얻어 챙기는 삶이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한 번씩 그 그물 친 곳으로 가서 뭐가 걸렸는지 보는 일은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에 어디에 그물을 쳐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여행이라는 그물에 걸린 것들이 이 책에 담겼다. 그것을 보고 먹고 하는 것은 독자의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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