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Book』     칼 구스타프 융 / 부글북스


1.
“나 자신의 내면의 이미지를 추적하던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여기서 비롯된다. 그것은 그 시기에 시작되었고, 그 후에 나온 세부적인 사항들은 그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나의 모든 인생은, 무의식에서 폭발 할 듯 터져 나와 수수께끼의 강물처럼 덮치며 나를 산산조각 낼 듯 겁을 주었던 것들을 해석하는 일에 바쳐졌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자료들이었다. 그 이후의 모든 것들은 단순히 외적으로 분류하고, 과학적으로 더 정교하게 다듬고, 삶의 현실로 통합시키는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잉태한 그 엄숙한 시작은 바로 그때였다.”

 

2.
왜 ‘Red Book'인가? 이 책은 칼 구스타프 융의 유작(遺作)이다. 융은 1913년부터 삽화까지 넣어가며 만든 이 책을 ’새로운 책‘이라고 이름 붙였다. 아울러 융은 빨간색 가죽 장정을 한 이 책을 ‘Red Book'이라 부르기도 했다. 융 사후 초고 상태로 남겨졌으나 어쩐 일인지 유족들이 공개를 미뤘다. 2001년 들어서 학자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된 후 2009년에 독일과 미국에서 소개 되었다.

 

3.
현대 심리학과 심리요법, 정신의학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칼 융. 서양사상사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 그의 사상은 예술과 인문, 대중문화 등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4.
이 책을 쓰기 시작한 1913년은 융 개인에게 한 의미를 지니는 시기이다. 융은 이 때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지그몬트 프로이트와의 관계가 끝난 때였다. 리비도와 종교를 둘러 싼 이견 때문이었다.


5.
칼 융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원형(原型), 집단무의식, 개성화  등이다. 융이 말하는 원형이란 사람, 행동 또는 성격의 모델들을 일컫는다. 융은 사람의 정신이 3가지 요소 즉 에고와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으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한다. 에고는 의식이며, 개인 무의식은 억눌린 기억을 포함하여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억을 말한다. 집단 무의식은 인간이 하나의 종(種)으로서 공유하는 지식과 경험을 말한다. 융에 따르면 바로 이 집단 무의식에서 원형들이 나온다.


6.
책을 열면 융의 환상 속에 두 사람이 나타난다. 엘리야와 살로메다. 검은 뱀도 등장한다. 역자 김세영은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엘리야는 융의 영혼을 안내하는 정신이고, 살로메는 융이 억누르고 있는 여성성, 즉 아니마이다. 엘리야는 나중에 필레몬이라는 마법사로 바뀌어 차원 높은 통찰을 보이며 이미지로 소통한다.”


7.
"자기 자신을 산다는 것은 곧 자신이 자신의 일이 된다는 의미이다. 자신을 사는 것이 쾌락이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도록 하라. 그것은 절대로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길고 긴 고통일 것이다. 그 이유는 당신이 당신 자신의 창조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자신을 창조하길 원한다면, 당신은 최선의 것과 지고한 것으로 시작하지 않고 최악의 것과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당신 자신을 살려고 최대한 노력한다고 말하도록 하라. 생명이라는 강줄기의 흐름은 기쁨이 아니고 고통이다. 그 이유는 그 강의 흐름이 곧 힘과 힘의 부딪힘이고, 신성한 것을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8.
이 책은 융과 함께 떠나는 환상여행이다. 이 책을 대할 때는 몸을 가볍게 하고 새털 같은 영혼으로 그저 바람의 흐름에 맡길 일이다. 책을 읽는 동안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일이다. 다 읽고 나니 나의 발이 아직 땅에 붙어 있는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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