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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유학, 지식인 - 현대 중국의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조경란 지음 / 책세상 / 2016년 6월
평점 :
【 국가, 유학, 지식인 】 조경란 / 책세상
일본과 중국의 근대 극복
일본의 유명한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2014년에 출간한 《제국의 구조 – 중심, 주변, 아주변》에서 중화제국 시대의 ‘선한 제국’의 원리로서 미국으로 상징되는 네이션=국가의 확대인 제국주의의 원리를 대체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그의 관심사는 중국이라는 제국을 생각하지 않으면 제국 일반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복종과 보호의 ‘교환’에 따라 통치하는 시스템을 제국의 원리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리고 이를 네이션=국가의 연장인 제국주의의 원리와 구분한다. 가라타니 고진의 논지의 핵심은 중국의 제국의 원리로써 서양의 제국주의를 극복하는 데 있다. 여기에서 일본과 중국의 ‘근대극복’이라는 명제를 발견하게 된다. 중국과 일본은 탈근대에서만큼은 서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을 떨어뜨려 버릴 수가 없다.
“21세기, 중국의 자기 인식은 가능한가?”
이 책의 저자 조경란 교수는 주로 중국의 현대사상과 지식인 문제, 동아시아 근대 이행기에 대해 연구해왔다. ‘중국 사상사 연구자’이다. 저자는 “21세기 중국의 자기인식은 가능한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과연 중국의 세기는 가능한가?”로 대체할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담론을 제공해준다. 저자는 ‘인문적 가치’의 측면에서 중국의 자기인식이 가능할 때야 비로소 중국의 세기가 유의미할 수 있다는 생각을 서문에 담는다. 저자가 칭하는 ‘인문적 가치’란 중국 굴기(崛起)의 역설적인 측면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중국이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진입한 뒤 10여 년 동안 중국의 주류 지식인이 내보인 21세기의 구상과 20세기에 대해 서술한 것이다.” 이 책의 키워드는 책의 부제로도 언급된 현대 중국의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제국성’과 ‘근대극복론’이다.
현대 중국의 유학 부흥과 ‘문명제국’의 재구축. 국가, 유학, 지식인
중국정부는 1980년대부터 일본과 네 마리의 용으로 상징되는 동아시아 발전이 유학과 관련 있음을 주목했다. 1990년대에는 유학을 공식적으로 ‘인가’했으며 2000년대에는 그것을 학제화하고 적극적으로 선양하는데 까지 이른다. 유학담론의 활성화는 이처럼 국가의 개입을 배경으로 한다. 현재 중국의 유학 부흥 현상은 지식인의 자각에 의한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의 ‘재발견’ 즉 전략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러한 추세는 기존의 유학이 권력-자본-미디어-지식 복합체로서의 유학으로 자리 잡게 된다는 이야기다.
유학이 부흥화하면서 주변화했던 중국 지식인이 사회 전면에 재등장하게 된다. 근현대 중국에서 유교적 지식인은 1905년 과거제도가 없어지면서 1차로 주변화 했고, 현대적인 의미의 지식인이 주변화한 것은 1957년 반 우파 투쟁에서였으며, 문화대혁명 시기에 극대화된다. 현재의 지식인은 개혁개방 이후 역사의 전면에 재등장한 셈이다. “현실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세계 속의 중국의 위상을 구상해야 하고, 이럴 때 유학은 사회주의의 중국식 패턴과 더불어 그 핵심 이데올로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의 보수와 진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중국에선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기준이 한국이나 다른 나라들과 같은가? 다른가? 즉 비사회주의 국가에서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기준이 사회주의 중국에도 그대로 적용될까? 저자는 이러한 궁금점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중국에서 좌우를 구분하는 방식이 다른 나라와 달리 조금 복잡하고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즉 중국이라는 정치지형과 지식지형의 특수성과 복잡성 속에서 진보와 보수의 아포리아를 잘 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도 자본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를 반대하면 좌파이고 그 반대이면 우파다. 그러나 좌파가 진보이고 우파가 보수인가 했을 때, 거기에 대해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이 최근 중국학계의 중론이라고 한다.
중국의 주변 문제, 티베트를 보는 다른 눈
책의 후반부엔 저자와 한족 출신의 양심적 지식인 왕리슝과의 대담이 실려 있다. 대담은 두 세 번의 이메일 교환을 통해 이루어졌다. 중국이 티베트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선 다양한 시각과 관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누구의 입장에서 입을 여는가가 차이점이 될 것이다. 왕리슝은 인터넷상에서 ‘중국의 체제 외 티베트 전문가’로 소개된다. 왕리슝은 1953년에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중국 지린성(吉林省)에서 태어났다. 그의 대표작은 《황화(黃禍)》와 《천장, 티베트의 운명》등이 있다. 왕리슝은 티베트의 저명한 작가 웨이써(唯色)와 부부이다. 티베트인과 부부가 되다보니 티베트에 관심이 고조되었나? 저자가 묻자, 왕리슝은 웨이써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천장, 티베트의 운명》을 비롯한 티베트 관련 책을 출판했다고 한다. 결혼은 그가 티베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가 아니라 결과였다는 이야기다. 그에게 주어진 상과도 같았다고 한다.
이 책은 오늘날 중국이 직면한 현안들과 관련해 현재의 논의 지형을 소개하고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은 주제가 근대 시기에는 어떻게 논의되고 평가되었는지를 더불어 배치함으로써 각각의 이슈를 연속적이고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끔 구성했다. 21세기 대국을 꿈꾸는 현재의 중국이 사상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오늘의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동아시아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