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        줄리언 반스 / 다산책방


1.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할 정도면, 상당한 인생 내공의 소유자일 것이다. 아니면 아직 자신과  죽음과의 관계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던가. 아님 겁 없이(없는 척)사는 사람이던가? 나는 어떤가? 죽음이 두려운가? 그리 두렵진 않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혹시나 닥치게 될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겠는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 책의 저자 줄리언 반스는 영국의 대표 작가이다. 그가 발표한 작품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제는 소멸 또는 죽음이다. 작가의 첫 소설 『메트로랜드』도 그렇고, 노년을 주제로 한 단편집 『레몬 테이블』, 자살과 기억이 주 테마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작가의 문학적 동지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 에이전트였던 아내 팻 캐바나와 사별 후에 쓴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선 남겨진 삶의 모습이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3.
반스는 그의 철학자인 그의 친형과 외할머니 이야기부터 꺼낸다. 죽음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가 목도한 죽음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시종일관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주변사람들이 살아있는, 살아 있던 모습을 그린 것이 더 많다.


4.
작가는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등 직계가족의 죽음 외에 어디서 그렇게 끌어 모았는지 이미 고인이 된 작가, 예술가, 사상가등 유명인 들이 갖고 있던 ‘죽음’에 대한 생각과 죽음 전후의 상황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작가 스스로 ‘죽음’을 객관화시킨다.


5.
프랑스의 비평가 샤를 뒤보스는 죽음과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낯선 호텔방, 이전에 묵었던 투숙객이 맞춰놓은 자명종이 힘차게 울린다. 야심한 시각이다. 느닷없이 암흑과 공포가 몰려온다.” 그리곤 이 상황을 ‘죽음의 숙명을 알리는 모닝콜’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그는 매우 친절하게 “현세는 잠시 세 들어 사는 세계”라고 했다. 기분은 별로지만, 공감이 가는 표현이다. 그렇게 죽음은 불현 듯 찾아온다.  
 

6.
플로베르는 이런 말을 했다. “모든 것은 학습을 요한다. 독서부터 죽음까지.” 애매모호한 말이다. 학습이라는 것은 반복 작업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죽음을 어찌 학습하랴. 반스가 그리는 최고의 죽음이 있다. 정확히 마지막 책을 쓸 수 있을 만큼의 기간과 명료한 의식만 남아 있다는 의사의 진단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그 책에 죽음에 대해 그가 생각하는 모든 걸 담아내려 했다는 것이다. 픽션이 될지 논픽션이 될지 모르지만, 이미 그가 몇 년 전에 구상하고 적어둔 첫 문장은 ‘이 죽음이라는 것을 정면 돌파해보자’였다. 하지만 세상 어느 의사가 작가의 문학적 요구나 여건에 맞춤한 진단을 내릴 것인가?


7.
이어지는 이야기는 한 편의 콩트다. 의사가 말한다. “유감입니다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작가가 말한다. “선생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전 알아야겠습니다. 얼마나 남은 겁니까?” “얼마나 남았냐고요? 2백 페이지 정도 남았다고 말씀드리면 될까요? 선생님이 운이 좋다면, 아니면 빨리 쓰면 250페이지도 가능 할 겁니다.”

8.
‘죽음’을 명료하게 인식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죽음은 살아있는 자의 시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죽음을 분석하고 평가하고 인식하는 것을 기대하지 말지어다. 역시 죽음이 두려운 줄리언 반스의 시선과 생각이 흘러 가는대로 따라가 볼 일이다. 나의 마음이 머무는 그곳 어디쯤에서 나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그런대로 ‘잘 살아온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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