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컬처 - 복음과 문화가 충돌할 때
데이비드 플랫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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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운터 컬처 】        데이비드 플랫 / 두란노

 

 

같은 성경책을 보면서도 마음에 받아들임이 달라질 때가 있다. 그 때 그 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새롭게 다가오는 경우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한 생명력을 얻으려면 먼저 내 마음의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받아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집을 그대로 마음 그릇에 담아 놓은 채 말씀을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말씀이 내 안에서 생명력을 얻으면 열정이 생긴다. 이렇게 살아야 할 때가 아닌데, 이렇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는 마음이 생겨야 정상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나의 삶이 하나가 될 때 참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다. 가짜가 아닌 진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특정한 사회문제에 열정을 드러내는 걸 보면 적잖이 격려가 되는 반면, 똑같은 크리스천들이 또 다른 이슈에 대해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걸 보면 상당히 걱정된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남다른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영적으로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살고 있지만, 몸은 이 땅을 밟고 서서, 이 땅의 문제들과 맞서면서 살아가고 있다. 크리스천이 아니라도 정의와 불의에 대한 입장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인간은 누구나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분별력이 상실되어서 일간지 사회면 한 귀퉁이에서 시선을 모으는 경우도 자주 있긴 하다). 래디컬을 통해 이미 국내 독자들에게 친숙한 이 책의 지은이 데이비드 플랫 목사는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길 원한다. 낙태, 가난, 고아와 과부, 성 착취, 결혼, 성윤리, 인종차별, 아직도 복음을 접하지 못한 이들 등에 대해 복음이라는 거울을 놓고 그 모습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특히 크리스천들이 동성애나 낙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크게 염려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크리스천들이 그저 사회적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을 품으실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9:23)

 

 

복음에 근거한 우리의 삶은 어찌해야할까? 지은이는 이렇게 권면한다. 부지런히 일하고, 단순하게 살며, 희생적으로 베풀고, 건설적으로 돕고 영원한 일에 투자하면서 살아가는 삶. 그러면서 기도하고, 사회의 어둠을 복음의 빛으로 밝히는데 참여하되 복음을 선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포하는 삶은 나 자신이 방관자에서 참여자로 변화되는 삶이다.

 

 

특별히 마음에 담는 부분은 사람에게는 관용하되 믿음에서는 불관용하라는 메시지다. 내가 하는 잘못은 그럴 수도 있지이고, 남이 하는 잘못은 그럴 수가 없지라는 마음을 품고 살아온 적이 많았다. 믿음은 그 때 그 때 내 안에서,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겐 관용하되 믿음에서는 불관용하라는 말은 이 땅을 떠나기 전까지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람에 대한 관용과 믿음에 대한 관용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불관용에 얽힌 혼란을 적잖이 정리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에 대한 관용에는, 상대를 동등한 가치를 가진 존재로 인정하면서 사사로운 신앙을 공적인 자리에서 거침없이 표현하는 기본적인 자유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믿음에 대한 관용은 다르다. 누군가가 특정한 신앙을 표출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 신념이 참되거나, 옳거나, 선하다며 이편과 마찬가지로 타당하다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를 관용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관점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이다. 개인의 분별력과 결단력이 많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문화를 거스르고 복음의 길을 걷기로 결론을 내리면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일단 판단이 선 뒤에는 더 이상 눈길이 가장 편안한 쪽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더없이 영화롭게 하는 방향에 고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이 줄 수 있는 최대치보다 훨씬 큰 상급을 주님 안에서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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