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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의 과학 - 물건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일상 탐험 ㅣ 사소한 이야기
마크 미오도닉 지음, 윤신영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4월
평점 :
쎄인트의 冊이야기 2016-059
【 사소한 것들의 과학 】 마크 미오도닉 / MiD(엠아이디)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어보자. 고체 상태였던 그것은 굳이 깨 물려고 하지 않아도 어느 결에 사르르 녹아버린다. 혀에서 열을 흡수해 갑자기 흐물흐물해진다. 초콜릿의 달고 쌉쌀한 맛과 향이 입안을 꽉 채운다. “초콜릿은 입안에서 액체로 변하도록 설계됐다. 이런 기술은 수백 년에 걸친 요리와 공학적 노력의 결정체다.” 초콜릿이 처음에 태어날 때는 좀 독특한 음료를 만들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처절하게 실패한 뒤, 초콜릿 제조자들은 소스 팬이 아니라 입안에서 핫초콜릿을 만드는 게 훨씬 더 즐겁고 현대적이며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결과, 제조사들은 고체 음료를 만들어냈고, 초콜릿 산업은 계속 성공가도를 달렸다. 이런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코코아 버터의 결정구조를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초콜릿 속에 숨은 과학의 힘이다.
종이는 어떤가? 종이 덕분에 출판문화사업이 번창해졌다는 사실은 두말 할 나위없다. 종이가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는 무척 귀한 존재감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종이가 너무 흔하다. 재활용품 중에서도 폐지가 차지하는 범위가 넓다. “공책의 종이는 평평하고 부드러우며 연속된 물질처럼 보이지만, 그건 착각이다. 종이는 짚으로 만든 가마니처럼 작고 얇은 섬유로 되어 있다. 실제로는 울퉁불퉁하다. 그러나 우리는 종이의 복잡한 구조를 느끼지 못한다. 현미경으로나 관찰 할 수 있는 아주 미시적인 규모에서 가공돼, 우리의 촉각이 느낄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이를 부드럽다고 느끼는 것은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서 둥글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지구는 언덕과 계곡, 산 때문에 울퉁불퉁한데 말이다.
지구상의 쓰레기더미 속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이 ‘플라스틱’이 아닐까? 페트병은 아무곳에나 다 있다. 깊은 산 중에도, 강물위에도, 바다 위에 어디서든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공해물질이 주는 삶의 편의성은 대단하다. “플라스틱 없이는 영화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셀룰로이드가 영상문화의 모든 것을 바꾸었다.” 셀룰로이드 플라스틱을 쓸 수 있게 되면서 필름 롤이 발명됐다. 이는 활동사진 기술로 연결된다. 사실 그림에서 작은 변화를 잇달아 보여줌으로써 그림이 ‘움직이도록’ 한다는 아이디어는 수백 년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유연하고 투명한 재료가 없을 때의 유일한 방법은 회전하는 조에트로프(원통모양의 도구에 조금씩 변화하는 연속그림을 그린 뒤 회전시키고, 구멍을 통해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장치)실린더를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셀룰로이드가 모든 것을 바꿨다. 사진을 필름 롤에 연속적으로 찍고 빠르게 돌려서 사진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조에트로프 보다 영상이 더 오래 움직이게 했을 뿐만 아니라 빛으로 투사할 수 있었고, 따라서 극장의 모든 관객이 경험을 나눌 수 있었다.
이 책의 지은이 마크 미오도닉은 「타임스」가 선정한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100명 중 한 명으로 소개된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강철, 종이, 콘크리트, 초콜릿, 거품, 플라스틱, 유리, 흑연 등 우리의 일상에 너무 깊이 들어와 있어서, 마치 인류와 함께 처음부터 존재했던 느낌마저도 갖게 하는 사물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 사물들을 바라보며,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하며 그 이력서를 다시 써주고 있다. 과학자로선 보기 드물게,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 그의 글들을 읽다보면, 각 사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고(故) 올리버 색스는 “밤을 지새워 이 책을 읽었다”고 했고, 빌 게이츠는 “미오도닉이 다음에는 어떤 책을 써낼지 기대된다.”고 했다. 나 역시 다음 책을 기대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