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 신화가 된 역사 그리고 진실
뤼스하오 지음, 이지은 옮김 / 지식갤러리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이야기 2016-015

 

진시황(秦始皇) 】       뤼스하오 / 지식갤러리

 

 

신화처럼 살다간 사람

 

 

진시황은 실존인물이면서, 마치 신화 속 인물 같은 존재이다. 진시황에 대한 기록이 잘 되어있는 고대 문헌은 사기 . 진시황(秦始皇本紀이다. “진시황제는 진나라 장양왕의 아들이다.”로 시작된다. 사기는 중국의 전통적인 사서(史書)에 속한다. 글자 하나도 허투루 다루는 법이 없다. 중국 역사학의 전통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기록자인 태사공은 사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진시황제진시황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한나라 역대 황제의 호칭을 기록으로 살펴 볼 때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국립 타이완대학교 사학과 교수인 저자 뤼스하오는 이 사기에 등장하는 호칭 문제를 놓고 기록자의 마음을 유추한다. ‘진시황제라는 호칭보다 진시황을 더 많이 사용한 것은 진시황이 남긴 삶의 흔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생각해보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진시황의 출생

 

진시황제는 진나라 장양공의 아들이다. 장양왕은 진나라를 위해 초()나라에 인질로 끌려온 상태였다. 우연히 여불위의 무희를 보고 한눈에 반해 취했으니 그가 시황을 낳았다.” 진시황은 요새로 치면 중학교 1학년 때 제국의 주인으로 등극한다. 이 당시 진나라는 누구나 인정하는 강대국이었다. 그런데, 그 제일 높은 자리에 열세 살 소년이 앉아있었다. 당연히 국정운영권은 어린 소년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기록에는 노애라는 인물이 나온다. 중국의 사극에도 자주 등장한다. 이 노애라는 작자는 진시황의 생모가 데라고 다니던 정부(情夫)이다. 진시황의 생모가 이 노애에게 어찌나 푹 빠졌는지, 왕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쥐어준다. 진시황이 직접 정권을 운영하기 전까지 태후가 수렴청정을 했지만 사실상 왕권은 노애의 손에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덫을 놓고 기다리다

 

노애는 진시황이 어릴 때는 어리다는 핑계로 국정 운영에 깊숙이 관여했지만, 마냥 그럴 수는 없는 법. 진시황이 22세 되던 해 덫을 놓고 노애의 반란을 대비한다. 노애와 뜻을 같이했던 사람들은 모두 사지를 찢는 거열형(車裂刑)을 처했다. 종족 또한 모두 죽였다. 진시황은 젊어서부터 보통사람과 다른 배포와 지혜, 잔악한 성격 등을 보여준다. 기록된 여러 사례를 통해 볼 때 진시황은 다분히 이중적인 성향이 짙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면 유독 자신을 낮춘다. 이를 저자는 과도한 겸손함혹은 오만함으로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노자도덕경에도 이런 경우에 맞는 말이 실려 있긴 하다. ‘총애와 모욕을 받으면 크게 놀란 듯이 대하라.’ 두 가지 상황 모두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영원히 이름을 남기고 싶다

 

진왕이 즉위해 정권을 잡은 지 26년 째 되던 해, 수백 년 동안 대치해오던 전국칠옹에서 진나라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나머지 육국을 단숨에 집어 삼킨다. 마침내 진시황은 고대 중국의 영토를 최초로 통일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 그가 천하를 통일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참으로 가당찮다. 저자는 이 책을 단순히 역사적인 기록을 풀어나가는 선에서 한두 발 더 나아가서, 옛사람들의 행실을 통해서 지금 이 순간에, 이 시기에 의 삶을 어떻게 운영해나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상대의 인격을 알아 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뜻을 이뤘을 때, 나머지 하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무엇을 하느냐를 살피면 된다.”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다. 어쨌든 진시황은 자신의 위대함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더 위대한 이름을 지으라고 명령한다. 진시황의 측근들은 예로부터 칭송받던 천황, 지황, 태황 중에서 태황이 가장 존귀하다고 판단해 태황이라는 존칭을 추천한다. 누가 봐도 대단한 이름이지만 진왕의 눈에는 영 마뜩찮아 보였다. 하여 그는 이렇게 명한다. “‘자는 떼고 자를 취한 뒤, 상고의 라는 이름을 가져다 황제(皇帝)’라 부르라

 

 

모든 것이 진왕의 뜻대로 이루어지니 천하가 크게 걱정하도다

 

진시황은 수많은 제후가 봉지를 더 차지하지 위해 경쟁을 벌인 탓에 수 백 년 동안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분쟁의 씨앗인 제후왕을 모조리 없애버리면 천하가 다시는 전쟁의 포화에 휘말려 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단한 발상이다. 그래서 무기를 몰수한다. 그리고 많은 프로젝트를 지시한다. 그때 당시엔 권력유지를 위한 하나의 방편일 수도 있겠지만, 후대에 끼친 좋은 점도 있긴 하다. 바로 도량형, 수레의 간격, 문자의 통일이다. 이 세 가지 조치 중에서도 이후 중국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항목은 문자의 통일이다.

 

 

역사를 왜 공부하는가?

 

사실 나는 이 책을 통해 진시황의 이야기도 궁금했지만, 저자가 갖고 있는 역사에 대한 신선한 감각과 시선에 눈길이 머물렀다. 저자는 역사를 배워야할 세 가지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첫째, ‘지혜의 계발이다. 옛사람의 지혜가 담긴 역사를 숫돌 삼아 우리의 지혜를 갈고 닦을 수 있다면 효과적인 역사교육의 방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한다. 역사를 배우는 두 번째 이유는 때를 살피고 세를 추측하기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함이라고 한다. 진시황의 비참한 말로를 지켜보며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때를 살피고 세를 추측하는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세상은 다양한 종류 혹은 성격의 인재를 필요로 한다. 역사를 배우는 까닭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대는 사물의 탄생부터 발전과 완성, 혹은 원인과 결과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흐름을 읽어낼 줄 아는 인재를 필요로 한다. 시대를 선도할 지도자는 반드시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옛 사람의 충고는 이런 관점에서 비롯된다. 역사를 배워야 할 마지막 이유는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함이라고 한다. 순자(荀子)의 말을 인용한다. ‘많은 왕이 변함없이 지켜온 것이야말로 족히 도의 중심이 될 만하다.’ 오랜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사람 됨됨이 즉 인성(人性)과 타고난 마음의 지혜(良知)를 손꼽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큰일을 이루려면 사람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 변할 때 세상도 변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진실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진실에서 출발해야만 진실을 얻을 수 있는 법이고, 진실해야만 사람을 감동시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