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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끝, 예수의 시작
카일 아이들먼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6년 1월
평점 :
冊 이야기
2016-014
【 나의
끝,
예수의
시작 】
카일
아이들먼 /
두란노
『비워야..
채워주던가 말던가』
‘망하지
않았으면 난 망했어요.’
벤처사업을
시작해서 승승장구 잘 나가던 젊은이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국
문을 닫고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이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그 어둠의 터널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
그의
삶에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사업에
망하지 않았으면,
그는
더욱 심하게 망가졌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더욱 감사하다고 했다.
평소
교회나 예수님이나 하나님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이해 불가한 스토리다.
망하면
망하는 거지 망해서 다행이라는 것은 뭔 소리야.
그러나
그 사람들을 탓할 자격이 없다.
믿음
안에서 살아간다는 사람들도 믿지 않는 이들과 별 차이 없다.
아직
끝까지 안 가봐서 그런가.
아직은
살만 해서 그런가.
예로
든 벤처사업가는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나
역시 삶의 여정에서 숨이 꼴깍 꼴깍 넘어가려할 때,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질 때,
두세
번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수면 위로 뜰 때 잡아끌어야 물귀신 작전에 당하지 않는다는 상식처럼,
그렇게
건져졌다.
덕분에
이렇게 책도 읽으며,
글도
쓰고,
숨
잘 쉬고 살고 있다.
아직은.
이 책에서 키워드를
뽑아보면,
비움,
채움,
항복,
회복,
실패,
사명,
약함,
강함
등이다.
어려운
단어들은 아니다.
단지
각기 처한 상황에 따라 그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이
책의 지은이 카일 아이들먼 목사가 이 책을 막 쓰기 시작했을 때,
전화
메모를 보게 되었다.
‘브라이언’이라는
남자가 남긴 메모엔 18개월
된 그의 아들이 몇 주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메모였다.
“여보세요”
“지난
20년
동안 이런 경험을 종종 해 본 터라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
비통한 마음만을 표현 한 뒤 침묵으로 대화를 채웠다.
그런데
조금 뒤 브라이언이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다.
“제가
후진하다가 쳤어요.”
더
길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브라이언은
아들이 집 밖에 나온 줄 몰랐다.
그는
그의 아들이 문을 열 줄 아는지조차 몰랐다.
그는
아들이 집 안에 안전하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들은
집을 나서는 아빠를 배웅하러 쫒아 나온 것이다.
이야기가
여기서 그치면 그저 가슴이 먹먹한 상태로 끝나고 만다.
브라이언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걸 잃은 것 같은 이 순간,
난생처음으로
예수님의 실재를 만났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이게
이상한 일인가요?”
이 책엔 이런 이상한 일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사람
생각엔 이상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선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단지
우리 마음속에 이상과 정상을 구분하는 안목이 적을 뿐이다.
하나님
나라는 나의 잔고가 제로가 될 때 시작된다.
모든
것을 비워야 채워주신다.
그래도
사랑하는 자식을 그렇게 데려가시고,
극심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게 만드시는 것은 좀 심하시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인 것을..“쫄딱
망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세상이
자기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굴지 않는다.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거들먹거리지도 않는다.
그의
심령은 시궁창에 처박혀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이런 심령을 칭찬하신다.
쓰레기
더미 속의 저 남자야말로 복 받은 사람이란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하나님은 내게
‘비움’을
깨우쳐주실 기회를 주셨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말이다.
그때는
잘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배운다.
진정한
‘비움’이
무엇인가를..
내가
케어 해드리는 환자분 중에 상처하시고 혼자 사시는 70대
초반의 어르신이 계시다.
기골이
장대하시다.
한
성깔 하신다.
젊으셨을
때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니셨을 것이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사셨단다.
어느
날 오시더니,
내게
“어제
시장 갔던 길에 생선 좌판을 다 뒤집어엎어 놓고 왔어”
하신다.
그래서
무슨 일 있으셨냐고 물어봤더니 하시는 말씀.
시장을
지나가던 길에 새우를 팔고 있기에 “오늘
저녁은 새우에다 소주나 한 잔 할까?”
하는
마음에 소쿠리에 담아있는 것을 담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생선장수가 상대를 잘 못 만났다.
소쿠리에
담아 있는 것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서 건네주는 순간 냅다 발길로 좌판을 걷어차 버렸다는 것이다.
소쿠리가
문제였다.
소쿠리
안쪽에 새우를 한 자락 깔고 투명 랩을 씌웠다.
그리고
그 위에 새우를 얹어 놓았다.
완전
속임수인 셈이다.
얼핏
보면 풍성해 보인다.
바구니를
털어서 봉지에 담아 본들 랩 위에 얹어 놓은 새우만 담기는 것이다.
가게
주인은 슬그머니 바구니를 엎어놓는다.
랩
안에 숨긴 새우를 들키면 안 되니까.
내가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이
양반 하는 말 좀 들어보소..“젊어서
내가 장사할 때 써먹던 수법이었거든..”
괜히
물어봤나?
마음을 비우고 산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나도
자주 하는 말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말뿐이었다.
비우는
시늉만 했다.
저
위의 생선장수는 그래도 반이나마 봉투에 담아줬지만,
나는
입만 살았다.
입만
비웠다.
비워야
채워주시는,
내가
내 그릇을 비우기만 기다리시는 그 분.
“야,
임마!
팔
아퍼,
빨리
비워~”
하시는데도
나는 딴 짓만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시고,
화가
나실까.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엔
마태복음 5장
4절을
이렇게 번역한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래야만
너희는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
카일 아이들먼 목사의 글과 메시지는
간결하다.
현학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장미가시처럼 콕콕 찌른다.
사방
벽이 거울로 된 방으로 초대해서 함께 거울을 보자고 한다.
“어때요?
당신의
모습이?”
평소에는
거의 못 보는 나의 뒷모습도 본다.
정수리도
본다.
옆모습도
본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
모습도 별반 다를 것 없어요.
그러나
그분은 지금 모습보다는 더 나아지길 바라셔요.
아무래도
뭔가 미션을 주시고 싶은가 봐요.
임파서블
미션이 아닌,
파서블
미션이요..”
이
책을 통해 내 믿음의 현주소를 점검해보는 시간이 된다.
나
자신에게 마저도 솔직하지 못했던 ‘나’를
만나보는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