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 나남 셰익스피어 선집 5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성일 옮김 / 나남출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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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15-255

 

맥베스】        셰익스피어 | 이성일 옮김 / 나남

 

 

 

일생은 걸어가는 그림자

 

 

저 두드리는 소리는 무어야? 내가 왜 이러지?

무슨 소리가 날 때마다 질겁하니 말이야.

이 손은 또 무슨 꼴이지? ! 눈알을 뽑는구나!

대양의 굽이치는 파도가 내 손에서 이 핏자국을

깨끗이 씻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니야, 오히려

내 손의 피가 저 너울대는 파도를 물들이며 퍼져,

녹색을 온통 붉은색으로 바꾸어 버릴 것이야.”

 

      (22)

 

 

코더 영주가 이끄는 반군을 제압한 맥베스는 화려한 귀환을 한다. 스코틀랜드의 왕 덩컨은 맥베스에게 코더 영주가 지금까지 향유했던 작위와 재산을 맥베스에게 포상으로 하사한다. 서서히 권력에 대한 욕심이 커져가고 있던 맥베스는 마녀들이 속닥거려주는 말에 훅 하고 넘어간다. 마녀들은 맥베스가 글라미스의 영주는 물론, 코더의 영주, 그리고 장차 왕이 될 사람이라고 추켜세운다. 맥베스는 덩컨 왕이 장남 맬컴을 왕위계승자로 천명하자 기분이 몹시 상한다. 차기 왕은 맥베스 자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맥베스 보다 맥베스 부인이 더 독하다. 덩컨이 맥베스를 방문해서 하룻밤 묵어간다고 하자 맥베스 부인은 맥베스를 설득해서 덩컨을 살해하고 왕의 자리를 차지하라고 부추긴다. 위의 인용한 대사는 맥베스가 덩컨 왕을 죽이고 나서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라는 독백이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 맥베스의 특이점은 주인공이 악인이라는 사실이다. 악인이 비극의 주인공이라? 관객들과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 주고 싶었을까? 맥베스가 악인의 범주에 들어간 것은 왕위를 향한 집념이 대부분이다.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 리처드 3역시 악인을 주인공으로 했지만, 다른 점은 리처드는 왕위를 뺏기 위해 온갖 비열한 계략이란 계략을 다 쓰는 무자비한 인물로 그려진다. 한편 맥베스는 욕망과 양심 사이의 갈등 속에서 고뇌한다. 군왕 시해라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나서 끊임없는 고통과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런가? 연민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인 목숨이었어. ‘죽음이란

말이 들릴 때가 언젠가는 오게 되어 있는 것을,

내일, 그리고 내일, 그리고 또 내일 - 이렇게

하루하루 작은 걸음으로 야금야금 기어가선,

약속된 시간의 종지부에 이르고야 말지, 해서

지나간 어제라는 날들은, 티끌 같은 죽음으로

멍청이들을 이끌어 가지. 꺼져라, 덧없는 촛불!

일생은 걸어가는 그림자, 별 볼일 없는 배우라!

무대 위에 나와서 정해진 시간만 껍죽대다가,

그다음엔 더 들리지 않게 돼, 천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같아서, 온통 왁자지껄 시끌덤벙한

소리와 아우성일 뿐, 아무 의미도 없는 게야.“

 

(55)

 

 

 

왕을 죽이는 일에 동참한(오히려 더 적극적이었던) 맥베스의 아내는 아무래도 자책감과 죄책감이 그녀의 정신을 지배해온 듯, 어둠 속의 삶을 살아간다. 급기야 몽유병에 시달리다가 맥베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맥베스는 절체절명의 외로움을 혼자서 견뎌 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은 마녀들의 예언이다. 과연 그녀들의 예언이 맞아 떨어졌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맥베스의 마음에 진작부터 자리 잡고 있던 권력의 야욕과 비열함이 극한점에 도달하면서 운명의 시계를 돌려놓은 것인가? 어차피 맥베스의 삶의 여정은 그 길로 갈 수밖에 없음을 알고 마녀들의 입을 통해 처음부터 펼쳐진 것이 아닌가?

 

 

 

이 책을 옮긴이 이성일 교수는 머리말에 이런 글을 썼다. “가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우리말로 무대에 올리곤 한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공연을 홍보하는 리플릿이나 프로그램에 번역자의 이름이 나타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무대 공연의 효과를 위해 텍스트를 손질하여 공연에 임하다보니번역자가 누구라고 밝히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연극에 있어서 공연대본 제공자(번역극에선 번역자)와 연출자 사이의 관계를 생각할 때, 작곡가와 연주자 사이의 관계를 대입하여 보면, 문제가 쉽게 정리된다고 한다. 악보대로 연주할 책임이 부과된 연주자가 악보의 여기저기를 바꾸어가며 곡을 들려줄 때, 그것을 바람직한 연주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저자는 더욱 번역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나의 번역은 산문 번역도 아니고 운문 번역도 아니다. 다만, 나는 셰익스피어의 시행들을 그 리듬에 있어 근접하는 행들로 번역하였다. (....) 원작의 시행이 갖는 리듬을 우리말에서 살려내되, 행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하고, 리듬 면에서 상응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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