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세운 집 - 기호학으로 스캔한 추억의 한국시 32편
이어령 지음 / arte(아르테)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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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세운 집이어령 / 아르테(21세기북스)

 

 

1. 육신은 영혼이 거하는 집이라고 한다. 잠시 우리는 그 집을 이용할 뿐이다.시는 말로 지은 집입니다. 벽돌로 집을 짓듯이 말() 하나하나를 쌓아 완성한 건축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일이 힘들 듯이 말로 지은 집인 시()를 읽고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다. 깊은 사유의 언어로 함축된 그 시어(詩語)들을 해독하고 이미지를 그리는 일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시()는 시인들이 주고받는 메시지라는 말도 있다. 과연 그럴까? 시인들은 다른 시인들의 시를 자주 대할까?

 

 

2. 저자 이어령 교수는 독자들에게 시의 집 전체를 투시하고 그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바라다볼 수 있는 요술거울을 전해주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비추어본 32편의 한국 시에 대한 텍스트 분석을 통해 불빛이 새어나오는 창문 그리고 반쯤 열린 문사이로 들여다보이는 뜰의 신비한 체험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3.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가리/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오//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드르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_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전문

 

이 시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마지막 연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생각한다.왜 사느냐는 말에 그냥 웃지요라고 한 김상용 시인의 미소는 말로는 표현 할 수도 논증될 수도 없는 삶 그 자체이다. 애매성과 모순으로 뭉쳐진 삶 자체의 다의성(多義性)을 그대로 옮긴 것이 그 웃음이며 시의 언어이다.”

 

 

 

4.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야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종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면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_유치환 깃발전문

 

깃발은 바다를 향하고 있다. 해원(海原)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방향을 유도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부분을 이렇게 풀어주고 있다. 그가 묻고 있는 기()의 의미는 바다가 아니라, 공중(하늘)에 매달린 깃발..... 바다이든 산이든 상관없이 하늘을 향해 나부끼는 원초적인 그 깃발의 의미요, 이미지이다.” 공중에 매달린 기를 바다로 향한 기로 한정해버리면 깃발의 보편성은 개별성으로, 그 수직성은 수평성으로 그리고 상승적 높이를 지닌 나부낌은 확산적 넓이를 지닌 나부낌으로 머물고 만다는 것이다.

 

 

 

5.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바라본다.”

_노천명의 사슴전문

 

오래전 대학입시에 노천명의 시 사슴이 출제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의 시구가 무슨 짐승을 가리킨 것이냐는 물음에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기린이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젊은 세대들의 시적 독해력 부족과 전통의 단절감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었다. “‘모가지라는 말 속에는 인간과 동물이 다 같이 공유하고 있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생명의 알몸뚱이가 들어있다.” 목이 짧으면 오히려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공격적 존재로 보이지만 목이 길면 수동성과 생명의 무력성이 드러나게 된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여인들의 초상이 조금씩 슬퍼 보이는 이유는 예외 없이 그 목이 길게 그려져 있는 탓이다. 어쩌다가 그렇게 목이 빠지다 못해 길어져버렸나.

 

 

 

6. 시는 언어로 세운 집이기에,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사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 이어령 교수는 독자가 그 안에 들어가 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차분하고 세심하게 안내를 해준다. 책 말미엔 상당한 분량의 덧붙이기를 통해 원본시, 작가소개, 주석, 인덱스가 있다. 피상적으로 그 뜻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시들을 다시 만나면서 새롭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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