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맨 리버 Old man River K-픽션 11
이장욱 지음, 스텔라 김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드 맨 리버이장욱 / 아시아

 

 

내 팔에 있는 문신 ‘Old Man River'는 그저 노래가 아니라 몇 가지 뜻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만 얘기해주겠다. 그 단어들은 영원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내 삶은 그 강을 따라 노를 저어 내려가고 있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나는 내 길을 가고 있고 삶은 막 속도를 높이려 한다. 아마도 나는 속도를 늦추고 삶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삶이 마구 속력을 내고 싶어 할 때, 속도를 늦추고 삶에 감사하겠다는 부분이 차분하게 내게로 온다. 이 말은 히스 레저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히스 레저는 호주 서부의 작은 도시 퍼스에서 태어나 배우로 활동하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마약에 빠지지도 않았고 스캔들로 만신창이가 되지도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도 사랑을 했고, 아이를 낳았으며, 이혼을 했다. 그의 마스크는 태평양의 바닷바람을 머금은 듯 거칠면서도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여러 배역을 소화시키면서 수많은 인생들이 그의 내면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이 곧 인생의 풍요로움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생은 아주 복잡하고 난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배신감을 느낄 만큼 단순한 것이기도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알렉스를 만나본다. 그는 지금 이태원 뒷골목에 앉아서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밤하늘을 향해 연기를 내뿜는다. 이태원이라는 동네는 대한민국의 서울 한 쪽, 독특한 공간이다. 이질적인 분위기가 구석구석 배어 있는 곳이다. 알렉스는 이태원의 한 생맥줏집에서 스태프로 근무 중이다. 얼마 전에 스물네 살이 되었다. 미국 지방 소도시의 대학을 중퇴했다. 한 달 전에 이태원에 왔다. 알이 한국에 와서 처음 한 일은 텔레비전 방송국을 통해 자신을 알리는 일이었다. 머나먼 타국에 입양되었다가 성장한 뒤 부모를 찾아온 이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떠오른다. 한국에 대해선 자신을 낳아준 부모의 나라라는 것 말고는 아는 바가 없다. 한국말도 서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은 한국어를 배우려고 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배울 계획이 없었다.” 그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어느 한 곳에도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알이 입양된 곳은 북미 중부의 소도시 시더래피즈였다. 양부 니콜라는 항공사 승무원이다. 메릴이란 이름의 양모는 알이 입양된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알은 양부의 손에 큰 셈이다. 니콜라에겐 메릴이 전부였다. “내 삶에는 나 자신도 설명 할 수 없는 신비로운 사건이 세 가지나 있었지. 그 가운데 하나는 메릴을 사랑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메릴과 결혼한 것이며, 마지막은 메릴을 잃은 것이란다.”

 

 

 

 

 

소설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잠시 알의 여자 친구였던 베트남 여인 리엔이 집에 놀러왔을 때였다. 그 때 니콜라가 집에 있었다. 서로 말이 없었다. 어색함을 깨뜨리기 위해 알만 바쁘게 입을 놀렸다. 알은 뒤늦게 그 이유를 알았다. 리엔이 거실 벽에 걸린 사진을 봤던 것이다. 그 사진들은 니콜라가 전쟁에 나갔을 때 찍은 것이었다. 베트남이었다. 니콜라에겐 여전히 그 전장(戰場)이 상흔(傷痕)으로 남아있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니콜라는 말했다. 군인이 사람을 죽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지. 니콜라는 자신이 베트남에 투입된 미군 55만 명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며, 그 전쟁으로 죽은 사람은 300만 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요즘 베트남전을 돌아보는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민주주의란 이름아래 무고하게 희생된 그 수많은 사람들의 원혼은 어찌 달래줄 것인가? 그 책임은 누가 지고 있는가? 그 상처는 누가 보듬어줄 것인가?

 

 

뿌리를 찾기 위해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한 알은 땀은 많이 흘렸다. 양복은 방송국에서 빌려 입었다. 사회자는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한국에 온 입양아로서의 감회를 물었다. 알은 어머니를 만나고 싶기는 하지만, 만일 어머니가 자신을 만나는 걸 불편해한다면 만나지 않아도 좋다고 대답했다. “저는 한국에 있을지도 모를 혈육에게 아무런 유감이 없습니다. 단지 부모가 어떤 이유로 아이를 버렸는지 확인하고 싶을 뿐입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 모든 입양아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언제나 향수를 느끼는 것은 아직 미숙한 사람이다. 세계의 모든 장소를 고향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내면의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12세기 스콜라 철학자의 말이다. 알을 통해 바라보는 이태원. 마치 작은 세계라는 느낌도 드는 동네. 인종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곳. 정체성이 흐려진 그곳에서 사라진 정체성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도 드는 그곳을 떠올려본다.

 

 

이 책은 아시아에서 펴낸 바이링궐 에디션 / K-픽션 시리즈중 한 권이다. 한국문학의 젊은 상상력과 우수한 작품들이 계속 출간되고 있다. 한 쪽 면은 영어로 번역되어 있다. 영어독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