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역사 기행 - 한반도에서 시베리아까지, 5천 년 초원 문명을 걷다
강인욱 지음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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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역사기행강인욱 / 민음사

 

 

고고미술학과 사학(史學)을 전공한 저자가 프롤로그에 올린 글이 인상적이다. “세계지도를 펼쳐 놓으면 유라시아 대륙 귀퉁이에 자리 잡은 한반도는 참 초라해 보인다. 그마저도 남북으로 잘려나가 주변의 중국과 러시아에 비해 더더욱 보잘 것 없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문화적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한국은 지리 환경적으로 강대국 사이의 소국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한국은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바닷길의 중심이자 유라시아 대륙으로 향하는 출발점이 된다. 자고로 한반도는 이러한 지정학적 조건으로 북방의 이웃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유라시아 역사의 일부를 이루었다.” 대륙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이야기다.

 

 

유라시아 초원은 헝가리, 남부 러시아에서 시작해서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를 거쳐 동쪽으로는 몽골에 이르는 북반구의 거대한 초원지역이다. 유라시아 한가운데 있는 우랄산맥은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이 중에서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의 준가얼 분지, 다뉴브 강 상류의 러시아 초원지대, 카자흐스탄 초원지대 등이 특히 유명하고, 동쪽으로는 몽골 초원과 만주 대싱안링 일대의 후룬베이얼 초원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초원의 현재 상황은 어떨까?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유라시아 일대가 경제적으로 급격히 성장하면서 유목민들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중국 북방의 네이멍구 지역은 무분별한 농지개발로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 여파는 극심한 황사로 이어져 매년 한국에까지 영향을 준다. 또 자원 개발로 인해 초원 지역에 거대한 도시들이 속속 들어서 완전히 중국화(漢化)되고 말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유목민들은 북쪽의 더 척박한 지역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 좋은 예가 중국 북방 유목민의 상징인 오로도스다. 오르도스 청동기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오르도스는 북방 초원 고고학의 대명사로 통용된다.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낭만적인 서사도 아니고 디지털사회로 옮겨 가며 대두된 노마디즘에 대한 찬양도 아니다. 나는 다만 초원 사람들과 그들의 역사를 우리의 관점에서 재평가하고자 할 뿐이다. 험난한 환경을 딛고 동서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했던 초원 사람들은 야만인도 악마도 아니었다.”

 

 

 

신라무덤과 알타이 파지릭 문화

 

신라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에 얽힌 스토리가 흥미롭다. 신라 적석목곽분은 서기 4세기에 혜성같이 나타나 200여 년간 존속하다 홀연히 사라졌다. 그런데 신라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에서 적석목관분과 비슷한 구조를 지닌 무덤이 나왔다. 둘 사이의 연관 관계는 여전히 학계의 미스터리다. 1920년대부터 남부 시베리아 알타이 지역의 파지릭 고분군이 조사되면서 신라 고분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설이 등장했다. 알타이 파지릭 고분이 신라 적석목곽분을 쏙 빼닮았기 때문이다. 파지릭 고분은 적석목곽분과 마찬가지로 무덤 주변에 둘레돌(護石)을 두르고 무덤 위에도 돌을 두텁게 쌓았다. 그 안에는 나무로 만든 무덤방을 만들었다. 과연 4세기 경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알타이 파지릭 문화와 신라의 문화사이엔 최소 500년의 공백, 그리고 수천 킬로미터의 지리적 거리가 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두 지역의 유사성이 논쟁의 중심이다. 최근의 연구 성과로는 파지릭 고분에 쓰인 목관의 연대를 나이테 측정법으로 살핀 결과 목관이 기원전 300년 이후에 만들어진 것임이 밝혀졌다. 학자들은 이를 통해 흉노가 발흥한 기원전 300년 이후에도 줄곧 알타이에서 거주했다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각 지역과 교류하던 파지릭 문화가 한반도까지 이어졌을까? 계속 발견되고 연구되는 고고학 자료들이 그 답을 주리라 기대한다.

 

 

저자의 관심 영역은 유라시아 초원보다 넓다. 초원스토리에서 마땅히 나와야 할 실크로드이야기에서 시베리아의 전차, (), (), 늑대인간, 하늘사슴 등의 흥미로운 주제들과 한반도와 연관된 것으로는 신라의 천마도, 금관, 고인돌 문화, 황금 보검 등의 황금 유물, 가야의 청동 솥과 돼지 국밥, 고구려 꼬치구이와 불고기, 세계사를 바꾼 고구려의 말등자 등의 다양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책은 현대 한국의 문화 정책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과 초원 지역의 과거를 연구하는 일은 그간 중국 중심의 역사 서술과 이념적 장벽으로 가려져 있던 유라시아와 한국의 관련성을 다시 잇는 토대가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지금껏 단편적으로만 제시되던 한국과 유라시아 초원의 교류를 구체적인 고고학 증거를 통해 살펴보고, 이를 통해 한국과 유라시아의 교류에 대한 고고 역사학적인 담론의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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