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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사 (천줄읽기) ㅣ 지만지 천줄읽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정아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5년 2월
평점 :
『도박사』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마침내,
나는
2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우리
일행이 룰레텐부르크에 머문 지도 벌써 사흘째다.
나는
그들이 내가 돌아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여기 등장하는 지명 룰레텐부르크는
실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작가가 지어낸 가상공간이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는 ‘룰렛마을’
정도이다.
라스베거스
정도는 못 되지만 그런 분위기를 갖고 있는 지역이다.
여기서
‘나’는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25세의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가난한
러시아 귀족 청년이다.
장군
집에서 어린 두 아이의 가정교사를 하고 있다.
장군의
양녀인 폴리나 알렉산드로브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폴리나 덕분에(도박장에서
돈을 따오라는 부탁을 받고)도박을
하게 된다.
그리고
도박중독이 된다.
이 소설엔
러시아인,
프랑스인,
독일인,
영국인이
등장한다.
화자에
의해 각기 다른 이미지로 그려진다.
마치
한 사람의 외국인이 그 나라를 대표하는 것처럼,
한
사람을 표현하는 것이 그 나라의 국민성을 나타낸다.
모스크바식으로
표현되는 러시아는 돈이 생기면 바로 써버려야 한다.
돈
한 푼 없다가도 목돈이 생기면 곧장 요란뻑적지근하게 만찬을 벌이는 것이다.
화자의
눈에 비친 외국인 중 호감도가 높은 영국인 애스틀리 덕분에 영국에 대한 점수는 후한 편이다.
소설
속 프랑스인은 비열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차 없이 남을 해친다.
말수가 적고 진실하며 부유한 영국인
애스틀리는 장군의 양녀 폴리나를 흠모한다.
화자도
폴리나를 짝사랑한다.
그러나
실제로 폴리나는 고리대금업자인 드 그리외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사기꾼은 폴리나가 큰 유산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폴리나를 유혹한다.
그러나
유산 상속이 물 건너가자 폴리나에게 빚만 잔뜩 지게하고 떠나버린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는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난다.
돈
때문에 만나고,
돈
때문에 떠난다.
돈
때문에 정신이 들고,
돈
때문에 정신이 나간다.
폴리나의
부탁으로 처음 도박장을 들어설 때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곧 자기 정당화를 시킨다.
“도박장에
들어선 순간,
온갖
탐욕과 탐욕의 온갖 추악함이 내겐 오히려 더 친근하고 걸맞게 느껴졌다.
서로가
격식을 차리지 않고 솔직하게 흉금을 털어놓을 때가 가장 기분 좋은 법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가식을 떨겠는가?
부질없고
쓸데없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면서 도박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신사적인 도박이고,
다른
하나는 천박하고 탐욕스런 도박으로 불한당 같은 패거리의 도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도박은 도박이다.
돈을
잃고 따는 과정 중 결국 무일푼 상태가 되었지만,
작가는
소설 중에 제법 큰 손 할머니(재산이
꽤 있는 장군의 인척)를
등장시켜 큰돈을 따기도 또 큰돈을 잃게 만든다.
상대적으로
화자인 청년은 도박판에선 피라미라는 이미지를 준다.
이
또한 (작가의)자기정당화?
이 소설의 내용보다도 이 소설이 쓰인
전후사정이 더 흥미롭다.
이
작품은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하기 직전에 직접 경험했던,
생생한
현실이기도 했던,
도박
중독과 또 중독 같은 사랑이야기다.
도박도
사랑도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1866년
《도박사》를
쓰기 3년
전에 작가의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질긴 운명적 사랑이었던 아폴리나리야 수슬로바와의 만남과 그 애증관계에서 작가가 느껴야 했던 사랑과
열정,
열등감,
굴욕,
비참,
증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일어났던 도박과의 만남,
첫
승리,
제어할
수 없는 중독이 리얼하게 그려있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보다 실제 작가의 삶과 가깝고 작품의 인물들 역시 작가의 삶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과 매우 닮아있다.
도스토옙스키는 평생 동안 돈 걱정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더러
돈이 생겨도 경제관념이 희박해서 돈이 그의 주머니에 남아 있지를 않았다)
이
작품을 쓰게 된 것도 미리 당겨 쓴 돈 때문이었다.
돈이
절실히 필요해진 작가는 작품에 대한 이런저런 구상을 나열하며 여러 출판사에 편지를 보내 선금을 요청한다.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하고,
오직
출판업자 스텔롭스키로부터 3,000루블이라는
선금을 제안 받는다.
작가가
다른 출판사에 요구한 선금이 100~200루블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금액이다.
그러나
이 출판업자는 작가의 영혼까지도 접수하는 악덕업자다.
도스토옙스키도
크게 당할 뻔 했다.
그러나
작가에게 천사처럼 다가온 여인이 있었다.
러시아
최초의 속기사 중 한 명인 스무 살의 안나 스닛키나의 등장은 작가의 삶의 전환점이 된다.
작가는
안나와 함께 26일간
작업을 하게 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26세나
어린 안나는 작가가 갖지 못한 많은 면들,
즉
현실성,
결단력,
추진력,
경제관념,
실행력
등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의 한 달 가까운 낮과 밤은 이듬 해 결혼으로 방점을 찍는다.
독자는
안나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느낀다.
안나는
도스토옙스키와 14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도스토옙스키가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헌신하며,
현실적인
조력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