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풀어쓰는 중국이야기 - 중국과 중국인의 혼 찾기
이우각 지음 / 생각과사람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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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어쓰는 중국 이야기이우각 / 생각과사람들

 

 

 

 

중국의 역사를 아무리 쉽고 단순하게 설명한들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중국의 역사는 깊고 넓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의 역사부터 내려오다 보면 나라 이름과 인물들의 이름을 읽고 기억하다 날 샌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독특함이 있다. 우선 글의 순서가 현대사부터 시작된다. 그렇다고 과거의 역사를 생략한 것은 아니다. 단지 과거를 향해 달려가는 열차를 후진시켜 바로 직전의 정거장부터 들러서 천천히 뒤로 가는 것뿐이다.

 

 

주요 인물들의 이름을 풀어본다

 

21세기 중국은 20세기 중국을 발판으로 일어섰다. 20세기 중국을 이끈 인물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이로 모택동이 지목된다. 모택동은 하나의 사상과 이념, 인구를 통일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서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제3세력을 대표하는 독특한 위상을 확립했다. 모택동은 어려서 농사일을 돕다가 8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논어사서등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반대로 상급 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농사일을 돕다가 16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동산고등소학에 입학했다. 신해혁명(1911. 10)이 일어나자 잠시 혁명군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제대했다. 영국 유학에서 돌아온 교사 양창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중국의 봉건적 굴레를 비판하게 된다. 여러 여정을 거친 후 193410, 서금에서 섬서성 연안까지 12,500km의 대서천(大西遷)을 시작. 그 후 홍군을 국민혁명 제8로군으로 개편해 일본군에 대항했다. 1949101(56)에 비로소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고 국가주석 및 혁명군사위원회의 주석이 됨. 196510월 이후 연금 상태에 있다가 문화대혁명을 지휘했다.

 

 

지은이는 모택동의 이름을 푼다. “모택동(毛澤東)은 못 택(), 동녘 동()자를 쓴다. 못 택은 물, 그물, , 다행 행()으로 채워져 있다. 포용성과 포괄성이 보인다.” 모택동 주변의 수많은 인물들 중 주덕과 주은래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모택동과 함께 정강산에서 중국공산군의 터전을 마련했다. “주덕(朱德)은 그의 이름처럼 군인의 길, 혁명가의 길을 걸으면서도 잔혹한 테러나 보복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중국, 중국인의 혼()

 

 지은이는 이 책에서 먼저 중국의 혼()을 찾고자 했다. 따라서 중국의 역사를 창업(創業)과 수성(守成)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그리고 권력의 이동만을 뒤쫓다가 놓치는 부분이 있을 것을 염려해서 기록과 창작에도 초점을 맞춘 역사적 이해방법을 적용하고 있다.결국 중국의 혼, 중국인의 혼은 통합과 개방이었다. 중원 대륙을 하나의 국토로 바라보면 통합이 가장 큰 과업이고 목표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통합을 이루고 나면 당연히 눈을 외부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통합과 개방은 불변과 불멸의 혼()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수단일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체질화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어서 만리장성과 한자 문명권을 거론한다. 지은이는 만리장성이 폐쇄와 단절의 산물이 아니라, 통합과 개방의 산물이라고 한다. 통합의 의지와 개방의 의지가 하나로 모인 곳이 바로 만리장성이다. 그곳은 혼의 산물이고 또 혼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그것을 실체화, 형체화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내야 했던 것이다.” 우리의 혼이 육신을 통해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처럼 중국의 혼은 만리장성과 한자 문명권을 통해 존재하고 활동한다는 것이다.

 

 

 

태자당(太子黨)

 

 

태자당은 중국 권력자들의 자녀 및 친인척이 대를 이어 득세하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 , , , 재계 실력자들의 자녀 약 4천여 명이 태자당에 속한다는 말이 있다. 태자당이라는 하나의 조직으로 뭉쳐져 있지는 않지만 결혼, 학교, 직장 등을 통해 그물처럼 얽혀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는 등소평의 장남인 등박방(鄧樸方)이 태자당의 실질적인 대부로 알려진 적이 있었다. 198964, 천안문 사건을 촉발한 중국 민주화 운동의 핵심요구 중 하나가 바로 태자당의 비리 척결이었다. 여론을 의식한 중국 지도부는 19978, 태자당 출신들의 공산당 내 승진을 늦출 것을 결정했다. 10년의 장고 끝에 내린 조처치곤 약하다고 생각하는데 중국민들은 어찌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태자당외에도 상해방(上海幇)이 있다. 전 국가주석 강택민이 상해시장, 상해 당 서기장 겸 중앙정치국 위원을 거쳐 국가주석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그의 후광을 입어 중앙 정치 무대에 진출한 사람들을 상해방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국무부 석유부 혹은 석유학원(대학) 출신의 인맥인 석유방(石油幇), 청화대학교 인맥을 의미하는 청화방 등등의 조직 앞에 아무런 연고 없이 정, 관계로 진출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시대는 현대라고 하지만 이 땅에 태어나서 떠날 때까지 신분제에 묶인 것처럼 살다가는 것이 아닐까?

 

 

 

진시황에서 장개석까지

 

 

진시황은 혼란과 폭력으로 얼룩진 춘추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진시황의 일생은 전형적인 영웅의 삶으로 기록된다. 매일 1(30kg)의 서류를 결재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한다. 전국을 5차례나 순회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북방의 대초원을 누비던 몽골이 중원을 차지한다. 13세기 중엽부터 14세기 중엽까지 1세기 동안 한족중심의 중원땅에 몽골의 대초원이 옮겨졌다. “장개석(蔣介石)의 이름은 볼수록 특이하다. ‘사이에 낀 돌이라는 뜻이다. 본명은 중정(中正)이다. ‘중심이 바르다는 뜻이다.” 앞으로 중국 본토와 대만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될까? 중국 지도층들의 영원한 과제가 될 것이다.

 

 

 

기록과 창작의 주인공들

 

 공자, 여불위, 사마천, 사마광 등이 기록의 주인공으로 소개된다. 그렇다면 창작의 주인공들은? 건안칠자(建安七子)와 죽림칠현(竹林七賢)은 동시대를 살면서도 극명하게 다른 길을 걷게 된 두 부류의 창작인들이 등장한다. 건안칠자는 자칫 관변문학(官邊文學)으로 오해를 받기 쉬울 만큼 당대의 세력가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학동인이다. 죽림칠현은 완적, 혜강, 산도, 향수, 유영, 완함, 왕융 등을 일컫는다. 죽림칠현이라는 말 속에는 낭만과 은둔이 담겨 있지만, 실제로는 세상 사람들의 주목과 소문 속에서 산 듯하다. 권력에 회유당하거나 아니면 권력의 탄압에 죽어야 했던 것을 보면 결코 세상 밖으로 멀리 나가지 못한 아쉬움을 품고 이 땅을 떠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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