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 최후의 환관들 - 청 황실이 빚어낸 영광과 치욕의 증언자 걸작 논픽션 6
신슈밍 지음, 쭤위안보 엮음, 주수련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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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최후의 환관들신슈밍 외 / 글항아리


 


 


청나라와 서태후


 


청나라에서 서태후(西太后)의 정치적 위상과 존재감은 막강했다. 서태후는 청나라 말기의 독재 권력자이자 함풍제의 세 번째 황후이다. 동치제의 생모이자 광서제의 이모로서 47년에 걸쳐 정치의 실권을 쥐었다. 일명 자희태후(慈禧太后)라고 불렀다.


 


서태후는 말단 관리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관직 사회의 생리를 터득하며 자랐다. 어려서는 유복하게 생활했으나 부친이 누명을 쓰고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수려한 외모로 17세에 함풍제의 궁녀로 뽑혀 원명원에서 지내게 된다. 당시 태후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성질이 드세겠다며 난귀인(蘭貴人)으로 책봉했다. 몇 년 후 서태후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함풍제의 관심을 끌어 승은을 입었고 의비(懿妃)에 책봉된다. 1856년 서태후가 아들 재순(載淳, 훗날의 동치제)을 낳자, 처음으로 얻은 아들의 탄생에 함풍제는 크게 기뻐하며 서태후를 의귀비(懿貴妃)로 책봉하였다. 그러나 당시 궁 안에서의 지위가 아직 안정적이지 않았던 서태후는 함풍제의 총애를 유지하는데 전력을 쏟기 위해 재순의 양육을 포기했고, 이로 인해 이런 시절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동치제는 훗날 서태후를 두려워했으며 공공연히 그녀와 맞서게 되었다.


 


 


 


밀어닥치는 근대화의 물결


 


서태후가 권력을 잡았을 무렵 청나라는 외세의 압력과 봉건 질서의 붕괴로 근대화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시기였다. 증국번, 이홍장 등의 관료들은 중체서용(中體西用)의 정신이 함양된 양무운동을 통해 근대화를 꾀하려 했고 서태후를 비롯한 만주족 지배층 또한 이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청일 전쟁의 패배 등으로 인해 양무운동은 실패로 돌아갔고, 주도 세력들도 몰락했다. 한편 친정을 시작한 광서제는 1889년 캉유웨이의 변법자강책(變法自彊策)에 관심을 보였고, 서태후에게 좌지우지되는 자신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캉유웨이의 정책을 지지하게 된다. 1898년 광서제는 '명정국시'(明定國是)라는 조서를 내려 캉유웨이의 개혁을 실행에 옮기려 했다(무술변법). 서태후도 초반에는 변법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으나 광서제의 목적이 권력을 이양시키는 데에 있다는 것을 알고 변법을 지지하는 유신파를 제거하려 했다. 유신파의 핵심이었던 담사동은 위안스카이에게 서태후를 감금하라고 부탁했고, 상황이 유신파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위안스카이는 이 사실을 서태후의 심복 영록에게 고했다. 서태후는 자금성으로 돌아와 무술정변을 일으켜 광서제를 유폐시켰고, 황제의 병을 이유로 다시 섭정이 되었으며, 진비는 매관매직을 했다는 이유로 북삼소에 가두었다. 또한 담사동과 양예를 비롯한 유신파의 핵심 인물들을 죽이고 변법 조치들도 취소했다.


 


 


궁정 안에서 바라본 서태후


 


사실(史實)에 근거한 자료도 중요하지만, 궁정 안에서 바라본 서태후와 그 주변 상황을 알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 책은 청말(淸末)의 환관(내시) 신슈밍(信修明)이 남긴 글이다. 환관들은 태감이란 호칭이 붙는다. 신슈밍은 그의 나이 23세 때 궁에 들어가서 25세 때 서태후의 사무 총괄처인 영수궁의 태감이 된다. 그 후 서태후를 8, 융유태후(광서제의 황후)6, 단강대비(광서제의 후궁)의 곁에서 10년간을 지내며 연극과 재물 관리를 담당했다. 이 책의 1부인 궁중의 숨겨진 이야기들은 문자 그대로 비사(秘史)이다. 태감 생활 25년 동안 그가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항간에 알려진 사실(史實)과 다소 다른 점도 있지만, 오히려 저자가 남긴 글에 신뢰감이 가는 이유는 최측근에서 본 대로 느낀 대로 썼다는 것이다.


 


 


내가 서태후를 처음 만난 때는 광서 28, 태후가 68세 되던 해다. 이때 태후는 이미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귀 뒤쪽의 몇 가닥만 남아 있어 거의 대머리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정수리에는 꽃을 붙이고, 머리를 빗을 때면 배우가 분장할 때처럼 가짜 머리카락을 붙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머리가 다 벗겨진 한 명의 노부인이었다. 머리카락은 이랬어도 정신은 대단히 정정했다. 두 눈썹은 정기가 흘러넘치고 눈동자는 별처럼 빛났다. 아무도 감히 그 눈빛을 마주 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40여 년간 국정의 중심에서 증국번, 좌종당, 이홍장, 호임익의 사대 명신(名臣)을 중용하여 천하를 중흥시킨 태후가 붕어하자 여러 신하가 서태후는 공적이 크고 과실이 적은 반면, 광서제는 공적이 적고 과실이 많다고 평가한 것은 확실히 정론(正論)이라 할 수 있다. 서태후는 엄하면서도 나름의 기백이 있었다. 화가 나면 태감, 아래채부인네, 궁녀들을 때렸고, 기분이 좋으면 고지식하고 멍청한 사람을 때렸다.”


 


 


그 외 처음 알려지는 사실들


 


어린 시절 공부를 게을리 해 부왕에게 꾸중을 듣고 벌로 태감들과 함께 청소를 했던 도광제, 지금도 천연두로 요절했다고만 알려진 동치제 죽음의 실상, 천둥소리를 무서워했던 황제였으나 한편으론 모후에게 실권을 내주고 총애하는 비가 죽임을 당했어도 한평생 서태후에게 효심이 지극했던 광서제, 광서제의 후궁 진비가 죽음에 이르기 전(우물에 빠뜨려 죽음을 당함)서태후의 미움을 받았던 내막. 영화와는 또 다른 선통제 재위 시절의 실제 모습, 광서제 붕어 당시 서태후와 광서제의 관계 등 이 책은 멸망 전후 청나라의 모습을 비교적 뚜렷하게 조명해주며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신슈밍이 스스로를 평가한 말이 특히 마음에 남는다. 내가 형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교만하지 않고, 허황된 꿈을 꾸지 않으며, 욕심 부리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순응해 본분을 지킬 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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