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철학하다 -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에드윈 헤스코트 지음, 박근재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이야기 2015-115

 

집을 철학하다에드윈 헤스코트 / 아날로그

 

  이 책을 읽다보니 타티아나 드 로즈네의 소설벽은 속삭인다가 생각났습니다. 벽은 속삭인다의 중심은 프랑스 역사에서 감추고 싶은 진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세기 초 무고하게 숨져간 수많은 유대인들의 이야기가 무겁게 갈아 앉아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공간 속에 남겨진 슬픔의 기억, 피의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요. 작가는 또한 이런 말을 담았습니다.집이나 아파트, 그리고 그곳들이 간직한 비밀과 신비는 언제나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왜 어떤 공간은 내 집처럼 편하고 또 어떤 공간은 달아나고 싶을 만큼 불편한 걸까? 내가 말하는 것은 귀신이니 유령이니 하는 것들이 아니라 어떤 장소에서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강렬한 느낌이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에게 이 책을 권해 주고 싶습니다.    집을 철학하다

 

공간 속 숨겨진 이야기

 

앞서 소개해드린 벽은 속삭인다와 이 책 집을 철학하다는 서로 분위기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우리가 일상을 영위해 나가는 공간 속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또 같은 분야의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지은이 에드윈 헤스코트는 그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집안 구석구석들을 찬찬히 다시 둘러보게 해줍니다. 지은이는 삶의 공간을 살펴보는 것은 살고 싶은 삶을 그려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거실, 부엌, 침실, 서재, 베란다 등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가 내가 살 집을 계획하고 고를 때 도움이 되겠지요.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건축을 흔적의 장소를 만드는 행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이데거가 거주 혹은 존재와 건축을 같은 것으로 간주했다면 벤야민은 사는 것과 흔적을 남기는 것을 동일시했다고 생각합니다.집의 생생함은 그것의 물질적인 측면보다 오히려 벽돌 사이에 스민 우리의 기억, 즉 그 속에 깃든 소중한 순간이나 고통스러운 순간에서 나온다.” 어린 시절에 살던 집에 대한 기억은 나이가 든 이후의 거주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그것은 때로 우리의 태도를 결정짓기도 하는데, 기억 속의 집처럼 지금의 집을 꾸미기도 하고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반대로 꾸미기도 한답니다.

 

 

마리아와 창문

 

지은이가 글의 중간 중간 집어넣은 명화들이 참 좋습니다. 덕분에 그림을 다시 보게 만드는군요. 성모 마리아가 등장하는 그림엔 거의 대부분 창문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수태고지에서 두드러지는데, 그림 속 창문을 통해 성모는 순결하며 하늘에서 내려 온 빛이 그녀를 비춘 결과 그녀가 임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려지는 창문은 또 다른 세상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책은 벽돌과 같은 건축 재료이자 영혼이 있는 가구

 

아무래도 내 관심은 책, 서재 등에 머뭅니다.책은 벽돌과 마찬가지로 건축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다. 나는 이 사실을 책이 없는 집을 방문하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집에 책이 없다는 사실은 내게 충격적이었고 오싹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도 이런 느낌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내가 누군가를, 누군가가 나에게 식사대접을 해야 할 때 거의 대부분 음식점에서 자리를 하지만, 1980년대~90년대 까지만 해도 집으로 초대하고, 초대받은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책장이 없는 집이 있더군요. 양주 장식장과 홈 바, 홀인원 기념패와 트로피 등이 담겨있는 장식장은 분명히 눈에 뜨이나, 책장은 어디다 숨겨 뒀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 방은 서재입니다했으면 아 그 방에 책장도 있겠구나생각했겠지만, 침실과 체력 단련실 외엔 숨겨둔 공간이 안 보였던 것으로 봐서 책장은 없는 것으로 단정 지었습니다. 집안에 책이 하나도 안 보이는 집 주인을 어떻게 묘사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요?

 

 

벽돌과 책의 공통점

 

책을 벽돌에 비유한 것이 좋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벽돌이 사람의 몸이 들어갈 공간을 마련해준다면, 책은 영혼이 거할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지요. 책이 주는 이점이나 독서의 효과에 대해 현학적인 설명은 자제하겠습니다. 한 마디만 한다면, 책을 통해 생각의 방향, 관점의 전환이 이뤄진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영()의 벽돌()이 많을수록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보는 기회와 방향도 다양해지겠지요.벽돌과 책의 공통점은 사람을 위한 물건이라는 측면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손 크기에 딱 맞게 제작한 견고하고 규격화된 벽돌은 거대한 벽도 손쉽게 다룰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찬가지로 책은 우주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우주라는 가장 큰 벽조차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시선이 머무는 곳, 내 마음이 자리 잡는 곳

 

지은이의 시선을 따라 다니다보니, 집안과 밖에 이렇게 많은 곳이 숨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계단, 지하실과 다락, 옷장, 욕실, 현관문, 문손잡이, , 지붕, 울타리, 거울, 바닥, , 천장 등. 가끔씩 우리는 기척도 없이 다가온 과거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건네준다는 느낌을 받고는 전율한다. 이는 놀라운 사건이 아니다. 우리의 집을 지탱하는 벽은 앞서 그 집에 살았던 모든 이의 영혼과 그 집에 대한 모든 기억, 그 집을 향한 모든 그리움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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