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 - 시인 장석주가 고른 삶과 죽음, 인생의 시 30 시인의 시 읽기
장석주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이야기 2015-098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장석주 / 21세기북스

 

1. 나와 그대가 살아가는 삶에 정답이 있을까? 누구나 정답을 쓰며 살아간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시험지는 누가 체크할까? 신앙인이라면 자신이 믿는 신 앞에 가서 성적표를 받을 것이다. 이 땅을 떠나면서 마지막 긴 호흡을 들이마시며 자신이 쓴 삶의 답안지를 들여다볼 수도 있겠다. 쓰인 답은 사실 살아온 흔적들이다. 내가 걸어온 길, 내가 보고 느꼈던 단상들,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다른 이들에게 준 상처들, 내가 받은 상처들, 넘어졌던 기억들, 아팠던 기억들 등이 빨리 보기로 순식간에 지나갈 것이다.

 

 

2.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가 더욱 좋아진다. 나의 삶의 20대 때 시를 참 좋아했다. 많이 읽고 많이 썼다. 시를 썼다기보다는 시 비슷한 것을 쓰긴 했다. 지금도 가끔 시 비슷한 것을 긁적이곤 한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살아온 것 같아 자책감이 들 때는 시를 쓴다. 함축의 언어로 내 마음을 그린다. 스쳐가는 느낌을 붙잡아놓는다. 때로는 한 권의 묵직한 책보다 한 편의 시가 가슴에 콕 박힐 때가 있다. 그 느낌이 나의 느낌이기도 할 때 더욱 그렇다.

 

 

3. 이 책의 지은이 장석주는 어떤 사람인가? 스무 살에 등단해서 여전히 시 쓰는 사람. 읽을 수 있는 것에서 읽을 수 없는 것까지 읽어내는 독서광. 읽고 쓰는 것에 모든 것을 건 문장노동자. 경기도 안성 호숫가의 수졸재주민으로 소개된다. ‘스무 살에 등단해서 여전히 시 쓰는 사람이라는 것과 사는 곳만 다를 뿐 나와 흡사하다. 이 책의 타이틀은 인생을 아는 나이 비로소 시를 읽다. 시인 장석주가 고른 삶과 죽음, 인생의 시 30’이다.

 

 

4. 지은이 장석주 시인이 소개하는 30편의 시()들은 대체적으로 쓰다. 달콤한 것만 찾던 입맛에는 더욱 쓸 것이다. 그러나 달디 단 약은 아이들에게나 먹일 일이다. 어차피 인생은 쓰다. 그리고 좋은 약이 입에는 쓰다. 아이들이 아프면 평소 아이가 좋아하던 음식을 먹일 것이 아니라 잘 안 먹던 음식을 먹이라는 처방전도 있다. 몸의 균형을 맞추듯 영혼의 균형도 맞추며 살아야 한다. 쓰디쓴 약은 나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비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_황인숙 전문

 

당신만 아픈 척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이고 당신은 피해자라는 생각도 말일이다. 따지고 보면 피차 가해자고, 피해자다. 쉽게 쓰는 말로 쌍방과실이다. 퉁 쳐야 할 일들 뿐이다. 이건 내 생각이다. 지은이는 이 시를 이렇게 풀어준다. “지금 이 시의 서정적 주체를 지배하는 것은 권태, 피로, 무기력이다. 이 시의 문면 뒤에 숨은 말은 다음과 같다. 나는 당신의 말함을 허락할 수가 없다. 나는 당신에게 어떤 대답도 해줄 수 없다. 제발 나를 건드리지 말고 내게 아무런 응답도 요구하지 말고, 나를 응답 할 수 없음’, 즉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익명성에 그냥 머물게 놓아다오.”

 

 

6. “나 떠난 후에도 저 술들은 남아/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사람들을 서서히 죽이겠지//

나 떠난 후에도 사람들은/ 술에 취해/ 몸은 땅에 가장 가까지 닿고/ 마음은 하늘에 가장 가까이 닿아/ 허공 속을 몽롱하게 출렁이겠지// 혀끝에 타오르는 불로/ 아무렇게나 사랑을 고백하고/ 술 깨고 난 후의 쓸쓸함으로/ 시를 쓰겠지// 나 떠난 후에도/ 꿀 같은 죄와 악마들은 남아/ 거리를 비틀거리며/ 오늘 나처럼 슬프게 돌아다니겠지/ 누군가 또 떠나겠지.”

_문정희 나 떠난 후에도전문

 

이 시를 읽다보니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사고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아파트 창을 통해 밖을,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가슴이 더 무너졌다. 내 아이는 죽어 없는데 해는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떠오르고, 아빠의 출근길을 배웅하는 엄마 품 아가의 손짓은 여전하고, 등굣길 아이들의 밝은 웃음과 활기 넘치는 번잡스러움은 여전하다는 것이 너무 이상하고 너무 받아들이기 힘들었단다. 그래서 두꺼운 커튼으로 창을 닫은 후 상당히 오랫동안 두문불출 했단다. 세월호 건져 올리는 비용이 천문학적 숫자라고, 아직 못 올라온 아이들을 가슴에 묻으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마라. 네 새끼 아니라고. 그저 입 다물고 조용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시적 화자가 상상적 죽음에 이른 이런 순간들은 존재의 고갈이면서 고갈이 아니고 덧없음이면서 덧없음이 아니다. 죽음은 운명의 견고함을 마침내 완성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시적 화자의 죽음은 미래의 것 즉, 아직 오지 않은 죽음이다. 여기서 기묘한 안도감과 함께 살아 있음에 쏟아지는 신적인 시선과 빛으로 우리를 이끈다.”

 

 

7. 내가 시()를 읽는 법 ; ‘단 숨에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한 번에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시는 결코 쉽게 쓰이는 법이 없다. 때로 A4 용지에 시를 그대로 옮겨본다. 워드로 두드려보기도 한다. 연의 구분, 끊김과 이어짐, 숨표 하나도 임의로 하지 않고 그대로 그린다.

그 부분들도 시의 일부분이다. 시인의 호흡을 따라 시를 읽고 마음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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