冊 이야기 2015-073
『전략』 프랑수와 줄리앙 / 교유서가
1. “나의 뿌리는 철학이다. 즉 고대 그리스다. 하지만 나는 중국을 통해 나아가는 선택을 했다. 오늘 저녁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와 중국의 간극이다. 내가 볼 때 중국은 유럽 사유 바깥에서 발전된 큰 문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지은이 프랑수와 줄리앙이 기업가들과 경영자들에게 효율성과 전략을 주제로 한 강연초두에 한 말이다.
2. 이 책은 강연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온전히 집필된 저작으로 평가된다.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연치곤 상당히 깊은 편에 속한다. 키워드는 전략, 효율성이다. 프랑수와 줄리앙은 현존하는 프랑스 철학자로서 파리7대학 교수다. 줄리앙은 항상 중국과 서양을 비교하는 논의를 펼치기 때문에 프랑스에서조차 중국학 연구가로 일컬어질 때가 많지만, 사실 그는 ‘중국학 연구가’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는 철학을 새롭게 하기 위한 도구로서 중국을 소재로 삼기 때문에 자신의 작업은 철학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중국을 단지 텍스트로서만 스터디 한 것이 아니라 20대 초반에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연구하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높이 사줄만 하다. 그 후 중국의 문학가 루쉰 연구로 고등사범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이후 30년이 넘는 동안 줄리앙은 40여 권의 철학 저작을 내놓았다.
3. 지은이의 『손자병법』 고찰은 확실히 철학적이다. 유럽에는 『손자병법』 같은 책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스에 전술에 관한 기술 개론서들이 있지만 단지 군대의 배치 방법, 방향전환 방법 등이 있을 뿐이다. 각도와 형태 등 언제나 기하학이 관건이다. 포위전이나 병참학(보급)책도 있긴 하다. 그러나 “『손자병법』 같은 중국의 위대한 텍스트에 비견 될 만한 책은 발견되지 않는다. (....) 유럽에서나 일본 등지에서 많은 경영자들이 『손자병법』의 저자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들에게서 영감을 받는다(일차 책임은 번역에 있다). 이들은 ‘손자(孫子)방식의’ 경영자들이다.”
4. 지은이의 관심사는 『손자병법』의 전략적 사유를 ‘정신적 지도자들’(비학문적 처세술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서 빼앗아 철학에 되돌려주는데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은이는 『손자병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첫째 개념은 ‘상황’, ‘지세’, ‘지형(地形)’이고, 둘째는 내가 제안하는 번역으로 ‘상황의 잠재력(勢)이다. 『손자병법』은 전략가에게 상황에서 출발 할 것을 권고한다.(....) 즉 그 상황 한가운데서 잠재력이 어디에 있고 또 어떻게 그것을 활용할 것인지를 내가 포착해내고자 하는 그런 상황을 말한다.”
5. 자칫 지은이는 중국에 폭 빠진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 사유의 맹점(盲點)과 유럽 사유의 가치 재발견 사이에서 균형감을 잘 잡고 있다. 이 책의 옮긴이 이근세 교수가 해설 말미에 남긴 글은 철학을 사유해야하는 당위성이라고 이름 붙여도 되겠다. “철학은 고인 물을 뒤흔들어놓을 수 있는 분란의 정신이다. 안일한 컨센서스(consensus)에 맞서 깨어 있는 정신으로 디센서스(dissensus)를 일으키는 작업이 철학이다. 프랑수와 줄리앙의 이 작은 책이 사유의 분란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