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冊 이야기 2015-057
『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 마시멜로
1. “다 베를린 장벽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만 아니었다면 세실리아는 편지를 발견하지도, 식탁에 앉아 열어보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을 거다.” 비밀이 없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고 했던가, 불쌍한 사람이라고 했던가? 누가 그랬나? 이상(李箱)이 작품 속에서 한 말이던가? 비밀도 비밀 나름이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비밀도 있는가 하면, 대부분은 악취가 나고 혐오감이 들고, 그 비밀을 아는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지고 혼이 밖으로 나돌게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2. 대부분의 워킹맘이 그렇듯이 세실리아도 늘 분주하다. 잠시 손이 놀고 있으면 머리가 더 바쁘다. 두뇌는 항상 불이 켜 있다. 더군다나 아이가 셋이나 된다. 그 중 한 아이가 도서관에서 《베를린 장벽의 흥망성쇠》를 빌려왔다. 그리고 문득 다락방에 ‘베를린 장벽 조각’이 생각났다. 장벽이 무너진 다음 해에 친구와 여행을 갔던 길에 기념으로 사왔다. 그런데 그 조각이 진짜 장벽조각인지 어느 집 마당에 파묻혀 있던 조각인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그 조각을 찾아보겠다고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이곳저곳 뒤지던 중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수신은 세실리아이고, 발신은 남편 존 폴의 이름이 적혀 있다. 봉투 겉면에는 “나의 아내 세실리아 피츠패트릭에게. 반드시 내가 죽은 뒤에 열어볼 것.” 그러나 그녀의 남편 존 폴은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다.
3. 좀 어수선하고 분주하고 정신없긴 하지만, 평범하던 일상이 한 순간에 변화된다. 멀리 출장을 가 있던 남편과 통화하면서 편지 이야기를 했더니 급 당황해하는 모습과 예정보다 일찍 집으로 온 것 등이 편지에 대한 궁금증을 부추겼다. 그래서 편지 봉투를 열었다. 그 첫 반응이다. “세실리아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분노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정말로 분노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았다. 순수한 진짜 최대 분노 말이다. 진짜 분노는 미칠 것 같고 광포해지고 경이로운 느낌이었다.”
4. 지극히 혼란스러운 마음이지만, 일상은 돌아가야 한다. ‘뭐든지 문제없는 척. 위장은 비틀리지만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 일상 속에서 어떻게든 스스로를 마비시켜서 나쁜 것도 좋은 것도 느끼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비밀을 품고 산다는 것은.’ 이제껏 비밀은 남편의 가슴 속에만 있었다. 그러나 편지를 열어보는 순간 그 비밀은 부부가 공유하기 시작한다. 혼란스럽다. 나중에 알았지만 남편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나름대로 속죄하는 의미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둘씩 포기하며 살아왔다. 작가는 간접적으로 독자에게 묻고 있다. 그러한 행위가 과연 보속(補贖)행위가 되는 것인가.
5. 처음부터 등장했던 ‘베를린 장벽’은 끝까지 함께 간다. 세실리아는 남편 존 폴과의 사이에 마치 베를린 장벽이 다시 세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냉전 시대의 표징인 그 장벽이 다시 쳐졌다. 1961년 냉전은 최고조에 달했다. 동독 사람 수천 명이 서독으로 넘어왔다. ‘스탈린의 로봇’이라고 불린 동독 수상 발터 울브리히트는 “그 누구도 장벽을 쌓을 생각을 안 한다”고 소리쳤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장벽이 쳐졌다. 1977년 10월 7일, “베를린 장벽에서 내려오라”고 요구하던 동독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해 10대 청소년 세 명이 죽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6. 소설 《허즈번드 시크릿》은 문체는 감성적이나 템포도 빠르고 강하다. 그리고 후반에 강력한 반전이 대기 중이다. 편지의 내용을 리뷰에 올리는 것은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생략한다. 아내 세실리아가 느끼는 갈등은 낯설지가 않다. 살아가며 기가 막힌 비밀을 알게 되는 경우가 없지 않기에 그렇다. 작가는 말미에 ‘If, ’를 화두로 삼아 마무리 짓는다. 지극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우리 인생이 어떤 길로 가게 될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도 그 편이 나을 것이다. 어떤 비밀은 영원히 비밀로 남는다. 그저 판도라에게 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