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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군상 (천줄읽기) ㅣ 지만지 천줄읽기
하인리히 뵐 지음, 사지원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2월
평점 :
冊 이야기 2015-043
『여인과 군상』 하인리히 뵐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1.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48세의 독일 여자다. 키는 1미터 71센티미터, 평상복을 입었을 때의 체중은 68.8킬로그램이다. 이상적인 체중에는 300~400그램이 모자라는 셈이다. 눈빛은 검푸르거나 검게 보이며, 머리카락은 약간 희끗거리는 숱이 많은 금발이다.” 레니 파이퍼라고 불리는 여주인공을 묘사한 소설의 도입부분이다. 하인리히 뵐은 레니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2. 주인공 레니의 삶은 평탄하다고 볼 수 없다. 하긴 평탄한 삶의 여정은 소설의 깜도 안 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단지 그녀가 비사교적이고, 고집 센 성격 등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평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는 다양하다. “나쁜 것”, “다 낡은 매트리스” 와 같은 표현은 대체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심지어는 공산당의 창부, 러시아 놈의 애인 등의 거친 표현도 있다. 통틀어 “단정치 못한 것”이라는 말을 뒤에서 듣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무감각한 여자 또는 전혀 감정이 없는 여자라고들 생각하지만 둘 다 맞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믿을 만한 중인의 말을 들어보면(증인은 마르야 판도른), 몇 시간씩 방에 앉아서 운다는 것이다. 작가는 레니에게 한없는 연민감을 품으면서 그녀를 바라본다.
3. 레니의 두드러진 성품 중 시선이 가는 부분이 있다. 경제적 관념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전후(戰後)라는 시기적 상황에 그 무엇보다 재산의 보존과 축적이 우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돈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올곧음이 있다. 사업가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란 탓일까? 레니는 아버지의 사업 수완과 그 번창을 지켜보면서 돈에 대한 환멸감을 갖게 된다. 이러한 관념은 레니의 삶에 그대로 반영된다. 아버지가 죽고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야 할 때에도 결코 돈에 집착을 갖지 않는다. 그녀의 검박한 삶에 필요한 만큼만 번다. 그러다보니 주위 사람들은 그녀를 “비정상적”, “몽상가”등으로 부를 수밖에 없다.
4. 뵐은 이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을까? 뵐은 일련의 그의 작품을 통해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간적인 것의 미학’이라고도 표현된다. 강제와 억압에 의해 축소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보듬어 안고 있다. 작품의 인물들을 통해 특히 이 소설에 등장하는 레니의 삶을 통해 나눔의 삶을 어떻게 실천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이미 뵐은 문명화와 과학화의 폐단을 내다보고 있었다. 환경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진보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서 땅, 공기, 물이라는 요소를 앗아 가고 독소화하는 것”이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5. 하인리히 뵐은 목공예를 가업으로 하는 가문의 여섯 번째 아들로 1917년 쾰른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기도 했다. 전후, 귀향해서 ‘전쟁에서 본 것’과 전후의 ‘폐허’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첫 소설 《열차는 정확했다》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9시 반의 당구》등이 있고 이 소설 《여인과 군상》은 1971년에 발표한 후 이듬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한 무고한 여성이 언론의 횡포에 의해 사회로부터 매장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영화화되어 크게 흥행했다. 뵐은 1985년 동맥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이후 ‘쾰른 문학상’은 ‘하인리히 뵐 문학상’으로 개칭되었고, 쾰른 루트비히 박물관의 광장도 그의 이름을 땄으며, 독일의 열세 개 학교에는 하인리히 뵐의 이름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