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
백지연 지음 / 북폴리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이야기 2015-028

 

물구나무백지연 / 북폴리오

 

 

위아래를 바꿔본다 [물구나무]서기

 

1. “햄릿의 엄마는 참 비겁하고 황당한 여자라고 생각했어. 남편을 죽인 걸 알면서도 그 남자와 결혼하잖아. 그런데 요즘 남편의 배신을 겪으면서 그녀 생각이 나더라. 웃기지? 왕비도 아닌 주제에 말이야. 같은 책을 읽어도 내가 어떤 삶의 단계에 와 있느냐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잖니. 지금도 물론, 햄릿의 엄마는 아주 별로지만, 이혼을 상정해보고 혼자되는 나를 상상해보고 그러다 보니 옛날에 생각했던 것과 달리 햄릿의 엄마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구석이 보이더라고.”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 민수의 여고 단짝 친구인 수경이가 하는 말이다. 수경은 재벌 회장인 그녀의 남편과 이혼이라는 테이블위에서 밀당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경이 이혼을 주저하는 것은 햄릿의 엄마처럼 익숙하던 것들과의 결별이 두려운 탓이다. 모든 것을 챙겨주던 이들을 떨어뜨리고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2. 27년 만에 여고 단짝들을 만난다. 물론 그네들의 삶은 여고 시절 품고 있던 꿈들과 서로에 대한 기대감이 뒤죽박죽이다. 살아감에 정답은 없다. 어느 길이 바른 길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그저 내가 살아오며 걸어간 길을 되돌아볼 때 덜 후회스럽고 덜 부끄러우면 그만이다. ‘인생이 생각했던 것하고 참 많이 다르지.’ 다르기 때문에 인생이다. 사람마다 얼굴모양, 성품, 습관 등이 모두 다르듯 각기 삶의 빛깔도 다 다르다. 불행이니 행운이니 객관적인 평가가 다르다. 일하는 것이 싫어서 하던 일을 멈추고 벌어놓은 것 까먹으며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남은 삶의 시간 동안 충분히 먹고 살만큼 벌어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일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3. 이 책의 제목인 물구나무는 주인공 민수의 여고 시절 단짝 멤버들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1 어느 봄날, 체육 선생이 70명의 반 아이들에게 운동장 다섯 바퀴를 돌게 한 후 엉덩이 살만 찌우는 아이들을 위한 특별 처방이라고 내세운 것이 물구나무서기였다. 3차례나 반복 된 물구나무서기에서 낙오된 6명이 그날부로 끈끈한 동지가 되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후 어찌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그 단짝친구들의 20여년의 삶의 궤적을 물구나무서듯 되돌아본다.

 

 

4. 물구나무서기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때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좀 더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계기도 된다. 물구나무 하는 동안 손은 철저히 바닥을 향한다. 대지를 향한다. 땅을 딛고 있는 것 말고 다른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기네스북에 오르기 위해 한 팔 또는 한 손가락으로 물구나무에 도전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겠지만, 보통은 손을 잘 짚고 있어야 한다. 내가 바로 서서 손에 쥐려고 했던 모든 것들을 비우고 내려놓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물구나무를 통해 바라보는 사물은 다르다. 평소에 안 보이던 것도 보인다. 더러 대낮에 별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밑으로만 몰렸던 피가 머리로 쏠리면서 몽롱함도 느낄 수 있다. 어쨌든 뇌는 좋아한다. 혈액공급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다 좋다고는 볼 수 없지만 물구나무가 주는 단상은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5. 민수가 20여년 만에 따로 또 같이 만나본 다섯 명의 단짝들의 삶은 여러 빛깔이다. 어둡게 시작해서 밝게 간 사람도 있고, 밝게 시작해서 어둡게 변해버린 사람도 있다. 공통된 점은 그녀들의 삶에 아버지란 존재감이 매우 중요하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존재감의 영향력은 배우자를 선택하는데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불행은 항상 좋은 인연의 가면을 쓴 악연과 함께 오더라고.” 우리 살아가는 삶이 그렇다. 그래서 기쁨과 슬픔을 마주할 때 어느 한 쪽에 너무 깊이 빠지지 말라는 말이 있다. 기쁨이고 슬픔이고 그것이 모두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삶 속에서 행복과 불행에 대해 덧붙여 다행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지은이가 앵커 백지연이 아니라 작가 백지연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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