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황제
김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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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15-023

 

라면의 황제김희선 / 자음과모음

 

1. 라면. 누군가에겐 간식거리지만, 그 누군가에게 일용할 양식이기도 하다. 남극취재를 위해 출발하는 방송국 팀들에겐 라면이 목숨과도 같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카메라와 기타 방송장비의 짐이 너무 많아 라면 박스 몇 개가 화물칸에 실리지 못하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소변을 보면 그대로 얼어버릴 것 같은 극지에서 최고의 인기 식품은 우리나라의 라면이었다고 한다. 라면이야기를 이렇게 늘어놓는 것은 순전히 이 책의 제목 탓이다. 라면의 황제. 제목만큼 표지그림도 심상치 않게 시선을 끈다. 이 책은 김희선 작가의 작품집이다. 라면의 황제외에 8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2. 김희선 작가의 작품은 리얼한 픽션들이다. 읽다보면 진짜 같다. 사실 같다. 르포작가라는 인상이 강하다. 구성이 치밀하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매우 사실적으로 인용된다.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작가에게 이 이야기 진짭니까? 물어볼 필요는 없다. 이 세상은 진짜 같은 가짜와 가짜 같은 진짜가 서로 어깨동무하며 한 지붕 밑에 살아가고 있으니 그저 읽으며 한 생각에 잠겨보고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울면 그만이다.

 

 

3. 페르시아 양탄자 흥망사에선 무심코 지나쳤던 테헤란로를 생각한다. “지금은 심플한 스칸디나비아식 인테리어가 유행이라 찾아보기 힘들지만, 한때 한국의 가정집 마룻바닥을 점령하고 있던 붉은색 카펫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로 시작하며 양탄자 이야기는 카펫의 명예의 전당에 오를만한 헤라트 카펫의 산실을 찾아간다. 19776월 테헤란 시장이 내한하여 서울에 머물면서 수교의 의미로 당시 서울특별시의 한 곳의 지명과 테헤란시의 한 곳의 지명을 하나 씩 바꿔 명칭하기로 하여 삼릉로를 테헤란로로 바꾸게 되었다. 테헤란시에도 서울로(Seoul Street)가 있다. 이 때 카펫 외교가 등장한다. 그 카펫은 서울 시청 집무실에 깔려 있다가 정권의 이동과 사회적 변화에 밀려 어느 세탁소 창고에서 햇볕도 못 본채 세월이 흐른다. 작가는 카펫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마치 오늘 아침 뉴스를 접하듯 파릇파릇하게 전해준다.

 

 

4. 작가의 문단 데뷔작인 교육의 탄생은 요즘 사회적으로 큰 관심과 우려를 일으키고 있는 어린이집 사건과 맞물려 교육이 주는 득과 실을 엄중히 따지고 있다. 교육을 받는다는 표현을 다시 생각한다. 받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가진 것을 뺏기는 것이 아닐까? 소설에 등장하는 천재소년(세상에서 아이큐가 제일 높은)1960년대 이전 출생자들에겐 금방 떠오르는 존재감이다. 일본의 한 방송프로에 출연해서 미적분을 풀던 다섯 살 소년은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의 아이큐를 가진 사람으로 등재된다. 작가의 작품에선 이 천재 소년의 미국 나사(NASA)에서의 생활이 그려져 있다. 실제로 그(천재소년)는 나사에서의 생활이 지옥 같았다고 표현했다. 한때 실패한 천재, 교육의 실패 케이스로 거론되었던 그에 대한 이야기가 느닷없이 국민교육헌장으로 이어진다. 1968125일생 국민교육헌장’.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 읽거나 백지에 써야 했던 그 어마어마한 헌장. 내 또래들에겐 국민교육헌장트라우마도 남아 있을 정도였다. 당당히 칠판 옆 벽면 하나를 통째로 점령하고 있던 그 위대한(?) 헌장. 1978년에는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한 우리의 교육지표사건이 있었는데, 대학교수 11명이 해직되고 일부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작가는 국민교육헌장을 등장시키면서 독자로 하여금 교육의 실체를 생각해보도록 자극한다. “물론 어쩌면 국민교육헌장을 외움으로써 정말로 학생들은 자신들이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때문이라고 철석같이 믿게 되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 국민교육헌장엔 천재소년이 나사에 있을 때 만난 소련에서 망명한 유명한 심리학자 레오니드 믈로디노프(이 이야긴 픽션이다)가 오버랩된다. 그가 나사에서 한 일은 우주 비행사들의 공포심과 불안감을 없애주는 일이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의 무의식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 이 심리학자가 한 말이다.

 

 

5. 라면은 어떻게 되었나? “한때 라면이라는 음식이 있었다.” 로 시작된다. 라면의 인기가 치솟는 만큼 라면이 주는 유해(有害)론이 드세 진다. 급기야 정부에서 라면을 못 먹게 한다. 제조, 판매 자체가 안 된다. 사람들은 라면 향수병에 걸린다. 그 중심에 김기수라는 인물이 있다. 27년간 오직 라면만 먹은 사람이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책이 있다. 책 제목을 보며 웃는다.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를 패러디한 내 영혼의 라면 한 그릇이다. 작가는 이 단편집에 참 다양한 테마의 글들을 실었다. 게놈 프로젝트, 역복제 연구과정(아직은 황당하지만 자식의 DNA로 부모 복제), 비행접시, 외계인, 개들의 메시지, 쿠루병 등등. 경이로운 도시에서뿐 아니라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W시는 그리 어려운 수수께끼가 아니다. 작가의 소설에서 원주시는 이상한 상실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드리워진 공간이면서 매우 신비하고 매력적인 도시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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