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아도 정거장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육필시집
황학주 지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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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15-014

 

카지아도 정거장황학주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1. “뻘 앞에 세워진 우리의 살림집/ 라이터 불을 켜서/ 두 사람 신발을 마루 밑에 넣으면/ 말꼬리 치는 눈보라 공중에 뱃삯을 내고/ 지상에 떨어진 두/ 상처의 별똥/ 용서해 줄 텐가/ 딱히 더 내디딜 곳 없음을//흙집 밑동 남루한 불에/ 뻘밭이 무늬를 굽는다

_뻘 앞에전문

뻘은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잘만 찾으면 게도, 낙지도 잡힐만하다. 그러나 뻘도 뻘 나름이다. 물이 와서 다독거려준다면 모를까 쓸모없는(생산성 없는)땅이기에 그 살림이 더 옹색해 보인다. 그래도 이 땅에 올 때 거저 안 왔다. 뱃삯은 내고 왔다. 용서를 누구한테 비는가. 그저 멋쩍은 마음에 품는 생각이다. 뻘밭에 생기는 무늬처럼 이들의 일상에도 피어나는 무늬가 생기길 바랄 뿐이다.

 

 

2. “아침에겐/ 아침이 되기 전의 바스락거림이 있다// 짐작건대/ 세간엔 많은 슬픔이 되기 전/ 자작나무 껍질에 닦은 눈동자가 있다/ 입 딱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바위 위에 잠시 앉았다 떠난 새에겐/ 초록의 입술 한 점 물어 올린/ 날기 전의 비틀거림이 있다// 산마루가 보이기 전에/ 오랫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게다

_아침에겐전문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 징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솜털하나도 흔들지 못하는 바람 일수도 있다. 공중에서 꽃잎이 하나 떨어져도 그 사연은 깊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 수도 있다. 살아가며 어떤 일과 마주할 때 나는 어떤 마음 자세로 받아들이는가가 관건이다.

 

 

3. “숲길이 막 어두워져 더 걸어 들어갈까 말까 하는 갈피에서/ 무슨 빛인가 발그레하게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숲이 항아리를 씻어 두었는지/ 무슨 빛인가,// 여름날 길을 달리는 모든 가지들 위에/ 밥 묻은 손바닥처럼 얹히는 것이었습니다// 그 길은 언젠가 두 사람이 걸어/ 이끼 앉은 돌 틈에서 목탑(木塔)을 들어내던 곳/ 찬 이슬을 지닐 때까지 구부러들어야 했던/ 어둠의 설움의 친정이었을,// 숲에선 하루해를 핥아 준 냄새가 나고/ 지하대수층에 다니러 가는 해가 밤나무 밑으로 접어들면/ 마른 새가 엎드려 있어도 좋을/ 눈동자 같은 둥지가 밝아 오는 것이었습니다// 오 숲길은,/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을 때가 있어서/ 두고 가는 사람을 짐작하지 않지만/ 사람과 다른 과일도 있다는 말을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_ 막 어두워지는 숲길전문

막 어두워지는 숲길에 들어선다는 것은 일면 무모하다. 그러나 살아가다보면 무모함을 따질 마음의 여유 없이 그저 발길을 내디뎌야 할 경우가 있다. 뒤돌아가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 무슨 빛인가 발그레하니 떠오른다. ‘밥 묻은 손바닥’. 시인은 늘 배가 고프다. 육의 배가 아니라, ()의 배라고 생각하련다. 찬 이슬을 맞도록 밤새도록 들어내고 싶은 마음의 무거움이 있다. 가슴에 매달린 돌덩어리가 있다. 어두운 밤 숲길을 혼자 가도 빛이 있고, 과일도 있답니다. 희망을 가집시다.

 

 

4. 시인의 시()는 가난하다. 그러나 궁색하지 않다. 좀 불편하긴 해도 그리 힘들어보이진 않는다. 어둡다. 그러나 걸어갈 만하다. 기다린다. 그러나 기다릴 만 하다. “그리움이 깊고 부드러우면/ 이런 시간엔 반드시 어디쯤에서/ 내 사랑을 기다리게 된다/ 아직은 가질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사랑” _나는 밤 두시에도 버스를 기다린다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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