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 암을 치유하며 써내려간 용기와 희망의 선언
이브 엔슬러 지음, 정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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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15-010

 

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이브 앤슬러 / 자음과모음

 

1. “아기의 몸이 맞닿은 엄마의 몸에 장소가 생겨난다. 당신이 여기에 있음을 말해주는 장소다. 이렇게 당신의 몸에 맞닿은 몸이 없다면 장소도 없다. 나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혹은 어떤 장소를 그리워하거나 가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내 몸에 맞닿은 몸이 없었으므로 내게는 어떤 간극, 구멍, 허기가 생겨났다. 이 허기가 내 삶을 결정지었다.”

이렇게 시작한다. 따뜻한 듯 시리다. 채워지는 듯 빈 공간이 보인다.

 

 

2. 희극 작품 버자이너 모놀로그200명이 넘는 각계각층의 여성들을 인터뷰하여 만든 작품이다. 나이든 여성, 젊은 여성, 기혼녀, 미혼녀, 레즈비언, 대학교수, 배우, 전문직 회사원, 창녀, 아프리카계, 히스패닉계, 아시아계, 미국인, 미국 원주민, 코카서스인, 유대인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 그들은 말하기를 주저했다. 다소 부끄러움도 탔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결코 그들 스스로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와 함께 성폭행당한 여성의 절규, 남편에게 존중 받지 못하는 여성의 질(),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 여성의 자위행위, 여성의 성을 찾아내는 워크샵, 그리고 여성의 출산 등 여성의 질()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3. 이 책의 저자 이브 앤슬러의 작품으로는 버자이너 모놀로그외에 필요한 목표물, 굿 바디, 정치적 회고록으로 마침내 불안정한나는 감정이 있는 존재입니다등이 있다. 뉴욕타임즈베스트셀러였던 나는 감정이 있는 존재입니다는 이후 감정적 동물로 각색되어 무대에 올려졌다. 이브 앤슬러는 여성과 여자아이에 대한 폭력을 없애기 위한 운동인 브이데이를 창설, 지역 조직과 활동가들을 위해 9천만 달러를 모금했다. 또한 ‘10억 여성이 일어나라는 세계적 운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4. 이브 앤슬러의 빈 공간 또는 허기에 자리 잡은 존재가 있었다. ()이었다. 이 책은 암 판정을 받고 난 후 7개월 동안 겪은 고통의 기록이다. 덧붙여 그녀의 암울했던 성장기와 술과 마약과 섹스에 젖어서 자포자기 상태로 지내던 청년기와 그 후의 삶을 역시 모놀로그 형식으로 들려주고 있다. 생부에 의한 성폭행과 구타 너머엔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생모가 있었다. 그녀의 트라우마는 자연스럽게 같은 처지의 다른 여성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녀의 입을 통해 듣는 콩고의 상황은 진짜 사람이 한 짓인가 의심스럽다. 처음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녀의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보스니아에서였다고 한다. 광장으로 끌려 나가 남편과 가족,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강간당했던 여성들에 관한 수백 개의 이야기. 노예처럼 며칠이고 붙잡힌 채, 정신병자 군인들에게 계속해서 때로는 한 번에 예닐곱 번씩 몸을 유린당한 어린 소녀들의 이야기, 몇몇 경우에 세르비아인을 포함해 보스니아인과 이슬람교도, 크로아티아인을 인종적으로 파괴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계획된 전술로 강간이 사용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이야기들. 그 외에도 수없이 가슴이 막혀오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녀는 행동가가 된다. 전사(戰士)가 된다. “당신이 이겨낼 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자연의 힘입니다. 아무것도 당신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겨낼 거예요. 이브, 당신은 전사잖아요.”

 

 

5. 누구나 암()진단을 받으면 왜 하필 내가?’ 한다. 그 다음에 조금 마음이 진정되면 내가 어쩌다 암에 걸렸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녀 역시 깊은 생각에 잠긴다. “강간 암이라는 게 있을까? 성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거나 그 때문에 심리적 외상이 생기거나 강간을 당하면 생기게 되는 암. 당한 그 순간에 생겼으나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맞게 된 심리적 외상의 순간에 순환하는 혈액 속으로 배출되는 강간 암세포가 있을까?” 자신이 건강할 때 건강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여인들의 자궁에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쏟아 부었던 그녀에게 자궁암이 생긴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브 앤슬러. 이 여인의 대단함은 그 생각과 행동에 있다. 암치료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상처받은 여인들, 진행형 고통 속에 있는 여인들을 잊지 않는다. 그녀의 병든 몸을 통해 역시 병들어가는 세상을 생각한다. 그 세상을 떠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으로 더욱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녀의 몸은 더 이상 그녀만의 것이 아니라 성적 학대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하는 다른 여인들의 몸, 자궁과 이웃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곧 그것은 치유가 필요한 세계 구석구석에 새 생명을 주어야 한다는 것과 그 모든 것이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마음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함께 그린다. 이브 엔슬러의 주 활동의 하나인 ‘10억 여성이 일어나10억이란, 전 세계에서 세 명에 한 명, 대략 10억 명의 여성이 일생에서 적어도 한 번은 강간이나 폭행을 당한다는 유엔 통계를 근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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