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과의 산책
이지민 외 지음 / 레디셋고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이야기 2015-001

 

여신과의 산책이지민 외 / RSG(레디셋고)

 

1. 젊은 작가들의 글을 읽는 것은 흥미롭다. 감각적이다. 강가에서 물고기가 튀어 오르며 은빛 몸체를 살짝 보여주고 다시 잠수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맛으로 비유하면 새콤달콤하다.

 

2. 여덟 명의 소설가가 여덟 편의 소설을 내놓았다. 각기 다루는 소재와 작법이 다르다.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있다. 지독한 상실감이다. 그러나 그 상실감이라는 것을 냉정히 바라보면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잃었나?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원래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살아오며 내가 획득했다는 것은 그저 게임 중 득템한 정도에 불과 할 수도 있다. 그 마당에서만 쓸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하다.

 

3. ‘케네디가 죽었을 때 나는 태어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이지민의 여신과의 산책은 어느 여인의 이야기다. 교제하는 남자들과 함께 있을 때 그 가족이 죽는 일이 반복된다. 하필이면 그 때 숨을 거둘게 뭐람. 교제하던 그들의 가장 큰 세상이 무너지던 날 그녀는 늘 그들 곁에 있었다. 이젠 사람을 사귀는 일이 힘들어진다. 행운의 여신이 아니라 불운의 여신이라는 닉네임이 붙는다. 그러나 불운도 상대에 따라 행운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렇게 그녀는 다시 일어선다.

 

4. ‘사람들의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무대는 외국이다. ‘언제, 어디에, 어떤 무덤을, 의사가 병을 선고한 뒤부터 나는 무덤의 형식을 생각한다.’ 시한부 삶이다. 낯익은 사람들에게 병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그들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만년필을 쓸 시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만년필을 산다. ‘만년(萬年)과 만년(晩年), 나는 만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만년을 책상위에 두고 온 만년필과 함께하고 싶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으로 오르고 싶다. 그녀는 그의 삶에서 왕복의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편도 티켓을 끊으려하나 그마저도 안 된다. 스키 시즌이 아니라서 그렇단다. 그렇게 그녀는 산에서 사라졌다. 산의 일부가 되었다. _한유주 나무 사이 그녀 눈동자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네

 

5. 김이설의 화석은 일상의 일탈이 그려져 있다. 현재가 과거를 만났다. 함께 하지만 옛 향기가 아니다. 그나마 유지하던 현재마저 놀란다. 혼란스러워진다.

 

6. “이 사람 이원씩 씨잖아!” 이원식은 개그맨이다. 그리 잘 나가는 편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사람들이 알아봐 주는 때가 있다. 응급실 의사가 어찌 알아봐준다. “코마 상태군. 빨리 의식부터 찾아. 근처에 있을 거야! 어서!” 응급실 구석구석 의식을 찾느라 난리친다. 그 소동을 지켜보던 119 구급대원이 한 마디 한다. “소용없소. 이원식 씨가 쓰러져 있던 계단 위아래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으니까.” 하긴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냐는 말을 들으며 살아가고 있긴 하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감지하지만 표현을 못하는 식물인간이 되어서 병실 화분에 갇혀 있는 벤자민과 대화를 나눈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하긴 같은 과이긴 하다. 식물.

_박 상 매혹적인 쌍까풀이 생긴 식물인간

 

7. ‘이 글은 1995년 봄에 시작되어 여름이 가기 전에 끝이 난다.’ 해이수의 뒷모습에 아프다의 첫 문장이다. 이 단편의 제목처럼 때론 뒷모습이 더 진솔하다. 외로움과 그리움, 상실감은 앞면보다 뒷면에 더 진하게 배여 있다. “아마도 조물주가 나를 진흙으로 빚고 나서 숨을 불어넣을 때 기쁨보다 슬픔의 함량을 더 많이 불어넣었나봐. 그러니까 내 책임이 아닌 거지.”

 

8. “‘사랑하다의 어원은 생각하다이다. 이제는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가? 어쩌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시간보다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린 지금이 더 간절하지 않은가? 유혹으로 만연한 삶에서 사랑은 구원이며 또한 함정이다.” _박주영의 칼처럼 꽃처럼

 

9. “창작은 무료함과 허무함에서 시작되고, 완성은 창작자와 세계의 심연 그 밑바닥에서 끌어올려진다.” _권하은 그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10. ‘결국엔 모든 것이 같다.’ 박솔뫼의 차가운 혀는 이렇게 시작된다. 무엇이 똑같다는 이야기? ‘추운 겨울이든 따뜻한 봄이든 결국에는 말이다.’ 다른 뜻이 내포된 듯한 표현이다. 그저 모든 것이 시들하다는 느낌이다. 화자인 나와 애인이기도 한 누나와 아르바이트 나가는 카페의 사장은 삼각형을 이룬다. 순서는 상관이 없다. 기둥이 필요하다. 지지대가 필요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삼각형이 되진 못하지만 우리 셋은 똑같다.’

 

11. 각기 다른 맛의 나물 여덟 가지를 버무려 먹은 기분이다. 따로 먹어도 괜찮고 같이 먹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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