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야기 2014-253

 

토우(土偶)의 집권여선 / 자음과모음

 

1. “나는 그들의 고통은 물론이고, 내 몸에서 나온, 그 어린 고통조차 알지 못한다. 고통 앞에서 내 언어는 늘 실패하고 정지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어린 고통이 세상의 커다란 고통의 품에 안기는 그 순간의 온기를 위해 이제껏 글을 써왔다는 걸. 그리하여 오늘도 미완의 다리 앞에서 직녀처럼 당신을 기다린다는 걸.”

 

2. 권여선 작가가 소설 말미에 붙인 작가의 말중 일부를 우선 옮겼다. 고통을 치유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작가는 어린 고통을 안아주는 것은 큰 고통이라고 했다. 선뜻 이해가 안가는 듯 하지만 맞는 말이다. 고통을 모르고 이해 못하는 큰 품은 그저 공간의 차이로 그친다. 사랑도 없다. 따뜻함도 없다. 물론 평안도 없다.

 

3. 소설의 무대는 국민교육헌장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쯤으로 추측된다. 산꼭대기에 바위 세 덩어리가 우뚝 솟아있는 그곳. 삼악산이라 부른다. 삼악산 남쪽 면을 복개해 산복도로를 만들면서 생겨난 동네 삼악동. 삼벌레고개라고도 부른다.

 

4. 이 삼벌레고개 동네도 층하가 있다. 재산의 등급과 등고선의 높이가 반비례한다. 아랫동네에는 크고 버젓한 주택들이 들어서있다. 아랫동네 주민은 대부분 자기 소유의 집에 산다. 세도 안 놓는다. 마당도 넓고 자동차도 있고 식성이 까다로운 아이들도 있다. 그러니 정원사에 운전기사에 음식 솜씨 얌전한 식모나 보모도 있어야 한다.

 

5. 중턱부터는 주택의 소유자와 거주자의 관계가 복잡해진다. 제집 사는 사람, 전세 사는 사람, 월세 사는 사람이 섞여 있다. 식모를 부리는 집도 더러 있었지만, 중간동네 식모들은 아랫동네 식모들과는 급이 달라 어딘가 조금씩 하자가 있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윗동네는 집값이 싸지만 제집 사는 사람은 드물었다. 전세나 월세도 못 내 일세를 사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식모를 두기는커녕 몸소 식모살이를 나가야 할 판국이었다.

 

6. 작가가 표현한 이런 부분은 삼벌레고개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네 살아가는 모양은 이렇게 세 부류로 구분될 수 있다. 살아가는 지역적 위치는 바뀔지언정 내부 사정은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인생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배움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명예가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권력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고 하지만, 이 땅을 떠날 때까지 어깨를 못 펴고 바닥만 쳐다보다 술 한 잔 들어가면 하늘 향해 빈주먹 날리다 만다.

 

7. 그러나 그 고통이 한 대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삶의 고통, 차별의 서러움이 대물림 된다는 것이 안타깝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치고 그 정도면 괜찮아 할 사람 없이 모두 우울하다. 아프다.

 

8.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표현한 것처럼 이 소설에 일관되게 흐르는 기운은 고통이다. 작가는 소설을 진행하는 화자로 7살짜리 소년, 소녀를 설정했다. 은철과 원이가 그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시각으로 보는 어른들의 세계는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서로 속이고, 감추고, 해치고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꿈을 잃지 않으려고 하지만 뜻대로 안 된다. 아이들의 운도 결국은 어른들의 그 기운에 묻혀가기 때문이다.

 

9. ‘고통을 그리는 작가의 손끝은 섬세하고 가슴은 따뜻하며 촉촉하다. “은철은 차창에 다가가 정면을 보고 앉아 있는 원의 옆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원은 끝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은철은 알았다. 자기가 병실에서 느꼈던 것처럼, 원도 날카로운 고통이 사방에 철창을 두른 작은 방 속에 갇혀버렸다는 것을,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그 방에 원 혼자 갇혀 있다는 것을..”

 

10. 토우(土偶)는 흙으로 만든 인형이다. 책의 제목인 토우의 집은 너와 내가 살아가는 이 공간이다. 구조물이다. 단지 크고 작고 화려하고 그렇지 않고의 차이다. 물론 그 기준과 구분도 너무 피상적이다. 공통적인 것은 나와 당신 역시 이 땅에서 마지막 큰 숨 몰아쉬고 떠나면 흙으로 돌아간다. 생기가 있을 때만 구체관절 인형이다. 단지 무대에서 맡겨진 역할만 다를 뿐이다. 끝까지 잘 해야 할 역할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얼른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 역할도 있다. 어쨌든 못되고 나쁜 역할은 오래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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