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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 17명의 대표 인문학자가 꾸려낸 새로운 삶의 프레임
백성호 지음, 권혁재 사진 / 판미동 / 2014년 8월
평점 :
冊 이야기 2014-184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백성호 쓰고 권혁재 찍다 / 판미동
1. 세상에 많이 돌아다니는 단어 중에 ‘행복’이라는 단어는 도대체 얼굴이 몇이나 될까? 나에겐 행복이 그대에겐 불행이요, 그 반대인 경우도 있으니 이를 어찌 설명해야하나?
2. 행복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17개의 목소리, 울림을 모았다.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굳힌 17인의 면모는 익숙한 사람도 낯선 사람도 있지만 각기 그 학문과 심성의 깊이는 측량할 길이 없다.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힘과 혼이 담겨 있다.
3. 행복을 만나기 전에 만나봐야 할 존재가 있다. 행복의 반대편엔 불행이라는 이름 대신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그 ‘상처’란 존재는 ‘내가 뭘?’ 하는 뻔뻔스런 표정이다. 그 이유는 그 상처를 만든 이의 심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상처는 마음의 병으로 자리 잡는다.
4.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상처에 대해 이런 조언을 해준다. “(단순한)위로는 ‘따뜻한 속임수’일 수도 있는 거죠. 유교는 ‘무엇을 하라’고 얘기하지, ‘너 힘들지?’하고 위로하진 않습니다. 『중용』이나 『대학』에 이런 말들이 나와요.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면 과녁을 탓할 게 아니라 자기를 탓해야 한다.’ 바깥에 대고 징징대지 말라는 얘기죠. 문제의 근원이 자기였으니 이 때 ‘무엇을 하라’라는 말은 자기를 혁신하라는 말과 동의어가 됩니다. 어차피 시련이나 상처는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것들이죠. 원망만 하고 있으면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안 돼요.”
5. 시인 도종환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했다. 시인 랭보는‘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했다. ‘오히려 상처를 모른다는 사람이 무섭다.’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의 말이다. ‘나는 여태껏 상처받은 적이 없어’라고 한다면 심각한 정신질환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만큼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줬다는 이야기다. 이나미는 이렇게 마무리 한다. “우리가 태어나서 세상에 나오면 당연히 행복한 존재가 돼야 할까요? 헛소리죠! 사르트르식으로 얘기하면 인간은 그냥 세상에 던져진 존재고, 불교식으로는 연기(緣起)에 의해 이 땅에 온 인연일 뿐이에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낮이 있으면 밤도 있어요. 불행 없이 행복이 성립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자기 안의 행복과 불행을 잘 볼 수 있느냐’를 물어봐야 하는 것이죠.” 말이 쉽다. 실제론 어렵다. 내가 남을 보는 것은 참 세밀히 보는데, 나를 보는 것은 거의 눈을 감는다. 다 아는 척한다. 그러나 남이 나를 바라보는 것의 반쪽이라도 나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6. 이제 보니 나는 매일 저녁 을람(乙覽)을 했다. 을람은 제왕의 독서시간이다. 밤9시에서 11시까지다. 이 시간을 제일 충실하게 지킨 왕은 정조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정국을 파행으로 몰고 가지 않으면서도 노론(사도세자를 죽인 그 노론집단)을 이기려면 그들보다 높은 가치와 탄탄한 논리를 갖춰야 했다.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당시에는 왕이라고 시간이 남아도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왕은 제대로 업무를 보기 위해서 빠듯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오후 9시나 돼야 겨우 책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고 한다. 나의 독서시간은 왕보다 길다. 밤9시부터 12시까지다.
7. 이덕일(역사학자)을 통해 정조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어본다. 정조는 치열했다고 한다. “그는 분초를 쪼개어 책을 읽었다. 단지 지식을 쌓기 위함이 아니었다. 세상을 다스리는 군주이니, 세상에 대한 이치를 터득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치를 궤고 있어야 세상을 굴릴 수 있다.” 정치가가 될 것도 아니고,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든 상관없다는 생각은 버리자. 책을 멀리하고 공부를 게을리 하는 정치가들이 득실거리다 보니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 이덕일은 행복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들려준다. “역사학자로서 제가 보는 행복이란 올바른 길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추구하는 겁니다. 좌파다, 우파다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사회 공동체 전체를 위해 올바른 길인 거죠. 그리고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비판적 견지를 유지하며 ‘불평지명(不平之鳴)’을 하는 겁니다. 돈과 권력이 아니라 그런 ‘가치’를 추구할 때 인간은 행복합니다.”
8. 이덕일은 다른 글에서 ‘불평지명(不平之鳴)’을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이 평(平)의 세상이 돼야 하는데 아닌 거다. 그래서 울음을 우는 거다. 그게 불평지명이다. 개인을 위해서 우는 작은 울음이 아니고, 천하를 위해서 우는 큰 울음이다. 그게 역사학이고 인문학이다.”
9. 느닷없이 내 손을 쳐다본다. 만약에 우리 손가락이 모두 같은 길이, 같은 굵기였다면 쓰기가 편했을까? 내 생각은 아니다. 젓가락 두 짝은 길이가 같으면 편하지만 손가락은 아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리 생겼으면 적응하고 지냈겠지만, 어쨌든 효율적인 디자인은 아니다. 각기 다른 전문 분야에서 축적된 지식과 지혜의 향기가 다르지만, 행복과 상처라는 화두에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주고 있다.
10.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인문학에서 보물찾기 하듯 행복을 찾으려 애쓰지 말자. 무엇보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점, 상처와 불행과 고통을 바라보는 위치를 바꿀 일이다. 상대방을 바꾸려고 열을 내는 그 에너지를 내 안으로 돌려서 나를 바꾸는 동력으로 쓸 일이다. 그 자원은 인문학에 있다.
11. 책 말미엔 이 책에 등장한 17명의 게스트들이 뽑은 ‘내 인생을 바꾼 책’을 각기 3권씩 추천해주고 있다. 귀한 북 리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