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 섬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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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이야기 2014-183

 

건너편 섬』 이경자 자음과모음

 

1. “저 돌아왔어요.” “저요김금자요돌아왔습니다아.” 대답할 사람은 없었다하지만 그 여자는 수많은 소리를 들었다그 여자가 하나하나 장만한 가구들말린 꽃송이로 만든 액자주방의 그릇들옷과 화분들모두 인사를 받았다.

 

2. 여인은 혼자 산다낮 동안 비워놨던 문을 열고 들어서며 소리친다그 적막감이 두려움으로 바뀔까봐 그럴 것이다한 10년 전 쯤혼자 지방에 내려가서 한 2년 정도 있었던 적이 있다완벽한 혼자는 아니었다함께 근무하는 직원과 같은 숙소에 머물 때였다그래도 가끔 혼자 숙소로 들어갈 때는 그 적막감이 선뜻 적응이 안 되긴 했다번잡스러움은 더욱 싫지만 내 발자국소리숨소리 까지도 내 귀에 예민하게 들리면 내 마음까지도 덩달아 예민해지곤 했다그렇다고 누구처럼 보온밥통에서 흘러나오는 녹음된 소리에 답을 하고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소설을 읽으면서 새삼 그 적막감이 떠올랐다.

 

3. 이경자 소설가의 글은 처음 읽는다. 1973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하니 오래되었다소설집도 꽤 많이 출간했다이 소설집엔 앞서 인용한 여인의 이야기이자 표제소설 건너편 섬외에 7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4. 모든 소설에 일관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지독한 외로움이다그러나 그 외로움이 궁색해보이진 않는다오히려 당당하다지독히 아프긴 해도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물론 그 중엔 감당 못할 무게를 덜어버리기 위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긴 하다.

 

5. 콩쥐 마리아」 에서 마리아는 한인 미주 이민 백 주년 되는 해에 주목할 만한 인물로 소개된다.마리아를 통해 한국인이 백열아홉 명이나 미국으로 이민을 했다는 것이다그러나 마리아는 그 백열아홉 명이 자신의 몸을 밟고 지난 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그만큼 그녀의 삶은 힘들었다가고 싶어 간 미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그리고 마리아를 통해 미국 땅에서 자리를 잡은 그녀의 오빠들은 마리아의 희생이 알려지면 자신들의 앞길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철저히 그녀를 거부한다오히려 상처를 줄 뿐이다그 상처를 가만히 감싸 쥐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평온해 보인다.

 

6. “명희의 혼란은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보호와 억압이 제도화된 역사 이래 생기게 된 정신질환 중의 하나일지 몰랐다.” 남북 분단의 비극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오늘 아침 뉴스만 하더라도 김정은은 그 애비 김정일을 더욱 우상화시킴으로 자신의 자리를 더욱 굳히고 싶어 한다북 아나운서 입에서 깨부순다는 표현이 거침없이 나온다기분이 과히 안 좋다언니를 놓치다는 이 땅의 유일한 혈육인 자매가 남북이산가족 상봉에서 만난 스토리를 담고 있다얼마나 섬세한 묘사를 했는지 글을 읽다 저절로 숨이 죽어진다나는 잘 모르겠다그분들(남북이산가족들)의 마음이 어떨지 정말 모르겠다조심스런 말이지만 남북이산가족 상봉 후 또 다른 무거움이 자리 잡지나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일어선다.

 

7. 남북 분단 후 남겨진 쓰라림은 박제된 슬픔에서 이어진다사상(思想)이 사람을 살려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혼자만 고초를 겪는 것이 아니라 가족친지들까지도 함께 휩쓸려간다이름 하여 연좌제(連坐制)봉건사회의 왕조국가에서 시행하던 법이 여전히 기세를 부리고 있다.

 

8. 이 땅에서 소설가로 살아가는 삶은 어떤가고독의 해자(垓字)는 한 여류 소설가와 그 주변(가족)의 삶을 그리고 있다물론 모두 이러하진 않을 것이다이혼 후 딸 둘을 성장시킨 소설가 엄마는 딸들에겐 쇠붙이 같았다차갑다 못해 무서웠다이혼하기 전 남편의 마음속에 비쳐진 아내의 모습은 그녀에게 애인이 생긴 줄 알았다한 지붕 밑 한 이불을 덮고 살지만 더욱 더 낯선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아내. “아내에겐 애인보다 더 질긴다른 사람들그러니까 소설 속의 인물들이 있었다그건 보이지 않아서 그가 질투할 수도 없었다그 여자는 한 번도 아내인 적이 없었다아이를 낳아서도젖을 먹일 때도 아마 아내는 젖을 빠는 아이의 무언가를 관찰했을 것이다.”

 

9. 살아가며 고독그리움이란 단어를 마음에 안고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짐짓 태연하게 아닌 척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그러나 어쩌랴 그 단어들도 내 삶의 일부인 것을 어찌하랴그저 주저 않아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힘이 빠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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