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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철학 - 모든 위대한 가르침의 핵심
올더스 헉슬리 지음, 조옥경 옮김, 오강남 / 김영사 / 2014년 7월
평점 :
冊 이야기 2014-164
『영원의 철학』 올더스 헉슬리 / 김영사
1. "아. 이 멋진 인간들이여!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간들인가! 오, 멋진 신세계여..." 올더스 헉슬리를 생각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것이 《멋진 신세계》이다. 흔히 조지 오웰의 《1984년》과 함께 거론되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2. 많은 이야기 중 책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오웰이 그리는 디스토피아는 공포와 기만이 지배하는 세계이며, 헉슬리가 그리는 디스토피아는 욕망과 말초적인 자극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오웰이 책을 금지할 자들을 두려워했다면, 헉슬리는 아무도 책을 읽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책을 금지할 필요조차 없어질 것을 두려워했다.
3. 책에 대한 관점만 보면 올더스 헉슬리가 이겼다. 최근 인터넷에 오른 글들 중에 머니투데이의 [新대한민국 리포트] '책 안 읽는 사회'를 보면 올더스 헉슬리가 백번 옳다. "문학소녀? 찌질하잖아요. 쌤도 문제 하나 더 풀라던데요". "진지 빨지 말고 책 치워라~". '무식한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기사 중간 중간 눈에 띄는 이러한 문구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 아이들이 이 나라를 과연 어떻게 운전해갈지 큰 걱정이다.
4. 책의 제목인 ‘영원의 철학’에 무게감이 실려 있다. 영원히 풀어가야 할 철학이냐? 영원을 향한 철학이냐? 헉슬리는 ‘영원의 철학(Philosophia perennis)’이 근대 독일의 수학자이며 철학자이자 뉴턴과 별개로 무한소 미적분을 창시한 독일 근세 철학의 원조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가 최초로 사용한 용어라고 한다.
5. 그러나 옮긴이 조옥경 교수는 ‘영원의 철학’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이탈리아 구약성경학자 아고스티노 스테우코가 자신의 저서 《Deperenni philosophia》(1540)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라고 한다. 라이프니츠가 이 용어를 ‘역사를 초월해서 전승되는 형이상학적 근본진리’라는 의미로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6. 영원의 철학에 따르면, 기독교 · 불교 · 유교 · 도교 · 이슬람교 · 유대교 · 힌두교 등 세계의 종교는 영원의 철학이 제안하는 보편적인 진리가 각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적용된 결과로 나타난 모습니다. 이 보편적인 진리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7. 첫째, 물질 · 생명 · 정신권의 근본바탕에는 신성한 실재가 존재하며, 모든 현상은 그러한 실재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둘째, 신성한 실재는 분석적 사고를 통해서는 포착할 수 없으며, 더 높은 차원의 직관적 통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셋째, 인간은 현상적 자아와 영원한 참자아라는 이중성을 지니며, 참자아는 신성한 실재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넷째,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러한 실재와 경험적으로 합일하는 데 있다.
8. 헉슬리는 ‘그대가 그것이다’, ‘세상 속의 신’, ‘최고의 사랑’, ‘진리’, ‘종교와 기질’, ‘선과 악’, ‘시간과 영원’, ‘침묵’, ‘기도’, ‘믿음’, ‘우상숭배’, ‘기적’, ‘영적 훈련’ 등을 포함한 27개의 화두를 갖고 생각을 풀어나가고 있다. 400여 인용문엔 각 종교의 경전 외에 노자, 장자, 에크하르트, 십자가의 성 요한, 카뮈, 사르트르 등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9. 다소 종교적인 면에 치중된 감이 크지만, 요즈음처럼 신앙인은 없고 종교인만 있는 현실을 직시해볼 때 종교를 갖고 있건 아니건 읽어볼 만한 책이다. 간혹 종교에 대한 불신감만 충만한 사람들은 하나님도 안 믿고, 부처님도 안 믿고 ‘나는 나를 믿는다’고 한다. 그럼 그 ‘나’는 제대로 알고 있는가? 종교는 우선 믿고 알아가는 방법도 있다. 그 후에 맛을 보는 경우도 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8) 단지 그 맛에만 길들여져서 다른 맛은 모두 배척하는 지나침은 자제해야 할 일이다. 아울러 ‘나’를 제대로 알고 ‘나’를 믿는 계기도 되리라 믿는다. 그 ‘나’를 제대로 알고 나면 ‘나’를 믿게 될지 어떨지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