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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학 소설선 - 초판본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장용학 지음, 홍용희 엮음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4년 1월
평점 :
북리뷰 2014-158
『 장용학 소설선 』 장용학 / 지만지
1. 지구상에서 총격과 포탄은 사라질 수 없는가. 더군다나 전쟁을 벌이는 자들은 안전시설에서 단추만 누르고 있다. 무고한 사람들이 졸지에 희생을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2. 이집트가 제안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휴전안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거부로 무산되면서 양측이 또다시 교전을 벌였다. 이스라엘은 당초 중재안을 수용하기로 하고 공습을 중단했다가 하마스가 중재안을 거부하며 로켓 공격을 계속하자 6시간 만에 가자지구 공습을 재개했다. 8일간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200명에 육박한 가운데 이스라엘에서도 하마스 공격으로 인한 첫 사망자가 나왔다.
3. “군데군데, 타고 허물어지고 쓰러지다가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서 있는 벽이 푸른 7월의 하늘에 서운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풍경이 이방의 땅에 들어선 것 같지만 폐허는 비교적 한산한 감을 주었다. 어저께의 폭격이 그만큼 철저하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 부분은 위의 가자지구 폭격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장용학 작가가 1960년에 발표한 단편 〈현대의 야(野)〉 도입부분에서 옮긴 것이다. 마치 어제 일을 묘사한 듯하다.
4. 책엔 ‘요한 시집(詩集)’, ‘현대의 야(野)’, ‘상립신화(喪笠新話)’등이 실려 있다. 세 단편의 공통점은 한국전쟁과 전후의 극한적인 궁핍, 폐허와 비인간적인 행동, 왜곡, 타락, 위선, 정치적혼란 등을 통해 나타나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전후(戰後)라는 현실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결코 평범한 상황에 놓아두지 않는다.
5. 작가의 대표작으로 소개되는 ‘요한 시집(詩集)’은 토끼의 우화로 시작된다. ‘한 옛날 깊고 깊은 산속에 굴이 하나 있었습니다.’ 토끼는 굴에서 빠져나오려고 별 수단과 방법을 다 써 봤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리고 그가 죽은 그 자리에 버섯이 하나 났는데 그의 후예들은 무슨 까닭인지 그것을 “自由의 버섯‘이라고 부른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그 버섯 앞에 가서 제사를 올린다. 토끼뿐 아니라 나중에는 다람쥐라든지 노루 여우 심지어는 곰 호랑이 같은 것들도 덩달아 그 앞에 가서 절을 한다. 효험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고, 그러니 제사를 드리나 마나였지만, 하여간 그 버섯 앞에 가서 절을 한 번 꾸벅하면 그것만으로 마음이 후련해지더라는 것이다. 그 버섯이 없어지면 아주 이 세상이 꺼져 버리거나 할 것 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6. 작가는 이 ‘토끼 버섯’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을까? 전후(戰後)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애틋하고 안타깝다. 전쟁 중 인간의 존엄은 생명과 함께 사라져간다. 아니 산 사람에게도 못할 짓을 태연히 하는 것이 일상이다. 작가는 내가 원치 않았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을 한없는 애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치우침 없이 그리고 있다. 그렇게 속절없이 꺼져간 생명들에 대한 추모사를 쓰고 있다.
7. 두 번째 실린 ‘현대의 야(野)’. 살아 있는 것보다 오히려 죽음이 일상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 같은 나날.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만 인간이다. 살아 있다는 것, 이것이 인간의 알파요 오메가다. 모든 것은 그 안에서의 일이다. 자유도 정의도 저 여름의 태양 광선을 받으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푸라타나스의 한 잎 이파리보다도 가치가 없는 것이다. 누가 그 허수아비들에게 그렇듯 엄청난 권능을 부여했는가....’
8. 작가 장용학은 1921년 함경북도 부령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인 1947년 월남했다. 이유는 “공산주의가 싫고, 희곡을 쓰고 싶어서”였다. 많은 문제작을 남기고 1999년 8월 31일 간암으로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