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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가렵다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4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6월
평점 :
북리뷰 2014-155
『 미치도록 가렵다 』 김선영 / 자음과모음
얼마 전 우연히 「렛미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이런 프로그램들의 특징이 결과가 궁금해서 끝까지 보게 만드는 것이다. 끝까지 봤다. 시작부분에서 몇 사람의 후보들 중 최종 선택된 20대 여성. 외모, 걸음걸이, 말투 모두 심하게 보이시하다. 거의 골목청년 그대로다. 부모 속이 까맣게 탔겠다. 이 여성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중학생 때라던가? 고등학생 때라던가?) 학교에서 집으로 가던 중 또래 사내 녀석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몸과 마음의 깊은 상처를 감당하지 못하던 고통의 시간들. 그 시간 속에서 이 여성이 택한 길은 그들처럼 꾸미고 행동하며 살아간다면 자신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급기야 몸 이곳저곳에 문신도 새겼다. 위기상황을 위해 포장했던 보호색이 이젠 점점 더 눈에 띄어 평범한 사회생활이 곤란할 지경이다. 「렛미인」의 결과는 어쨌든 해피엔딩. 부모도 못 알아볼 정도로 밝고 아름답게 변신했다. 몸과 마음의 깊은 상처도 함께 회복되길 기대한다.
성장통
이 소설에는 두 개의 큰 기둥이 있다. 자의반 타의반 거의 1년에 한 번씩 전학을 다닌 도범. 이름만 보면 평범한데 성이 붙으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의 일상은 이름만큼이나 억세다. ‘강도범’. 우리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삐딱선을 타는 때는 언제인가? 자의건 강요건 간에 한 번 그 길로 들어서면 좀체 벗어나기 힘들다. 어쩌면 그 선을 타기 시작하는 것이 그 아이의 목소리 일수도 있다. 몸으로 표현하는 목소리.
또 하나의 기둥은 다른 길로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 이미 그 길에 들어선 아이들을 보듬어 안아주며 올바른 성장을 도와주는 젊은 여교사 수인이다. 공통점은 각기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불안과 성장의 다른 이름 ‘가려움’
수인의 어머니를 통해 ‘가려움’이 묘사된다. 여러 마리의 닭이 모이를 쪼고 있었다. 수탉, 암탉, 중닭 그리고 병아리들. 큰 녀석들은 큰 녀석들대로 병아리는 병아리대로 각기 바쁘다. 역할 분담이 잘 되어있다. 병아리는 그냥 돌아다녀도 그러려니 한다. 그렇지만, 제일 밉상 맞고 볼품없는 것은 중닭이다. 하는 짓도 이상하다. 땅에 대고 날개와 목과 부리를 연신 비비고 있다. 거기에다 뒷목 털은 다 빠져있다.
수인 어머니의 설명이다. “가려우니께 땅에 대고 하도 비벼서 털이 빠져 그랴. 털이 나도 모자랄 판에 빠지니 볼품이 있겄어? 병든 닭처럼 보이지?” “왜 저렇게 비벼대?” “뼈도 자라고 날개도 자라고 깃털도 자라야 하니께 만날 가려운겨.미치도록 가려운 거여. 부리고 날개고 등이고 비빌 곳만 있으면 무조건 비비대고 보잖어.” 이 대목에서 우리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솟구친다.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특히 중학생 아이들. 이제 막 중닭 무리에 들어선 애매모호한 아이들. 그러나 우리 기성세대들은 어른처럼 굴라는 주문만 하지. 대접은 안 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런 반성의 마음을 갖게 해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이해하고 싶은데, 이해할 대상이 사라졌다
2014년 4월 16일. 우리 모두에게도 그랬지만 작가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내가 쓰는 글과 내가 하는 말이 어디에 소용이 닿을 수 있는 것인가.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며 소설가의 일은 무엇인가?” 밤 열한시가 다 되도록 야자가 끝나지 않은 고등학교 교실 창에서 쏟아지는 불빛이 공허로 느껴지던 어느 날. 작가는 마음속에 이런 질문을 던져서 다시 내 가슴을 터치한다. “저 아이들이 자라서 만든 세상은 지금과 다를 수 있을까? 사람과 배를 끝까지 버리지 않는 선장과 선원이 나올 수 있을까?” 아이들아. 너희들이 이끌어갈 세상은 꼭 그랬으면 좋겠다. 어둠의 그늘과 음모와 뒷거래와 직무유기와 거짓과 태만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길 바란다. 늦었지만 어른들이라고 부르는 인간들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서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