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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평점 :
북리뷰 2014-142
『 투명인간 』 성석제 / 창작과비평
1. 이 소설이 출간 될 무렵, 귀한 자식들을 군에 보내 놓고 밤잠 이루지 못하게 하는 일이 일어났지요. 동부전선 총기 사고 또는 참사와 같은 일이 이젠 제발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진실로. 직접 관계가 된 가족들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참으로 기가 막히고 숨이 막힐 일이지요. 이 사건과 함께 관심병사, 왕따, (기수)열외 그리고 투명인간이라는 용어가 난무했습니다. 모두 건강하지 못한 단어들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의 제목인 ‘투명인간’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2. “5월 초순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그들 중에는 만에 하나쯤, 그러니까 0.01퍼센트의 확률로 대단히 드물긴 하지만 투명인간도 있다. 나부터 그러니까.”
3. 첫 화자인 ‘나’는 투명인간입니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그대로 투명인간은 옷을 완전히 벗었을 때 제대로 투명이 됩니다. 그 상태에서 모자를 쓰면 모자만 공중에 떠서 다니지요. 영화에서 보신 적이 있으시죠? ‘나’가 일상복을 입으면 사람 눈에 보이지만 옷 밖으로 드러나는 신체의 일부분. 그러니까 손이나 목이나 얼굴이나 머리카락이나 귀때기 같은 건 안 보입니다.
4. ‘나’는 완벽한 자전거 라이더 복장을 하고 마포대교를 건넙니다. 다리를 건너면서 마포대교가 ‘자살대교’라고 생각합니다. “연약하고 다정하다가 극악무도해지기도 하고 그런 채로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나르시시즘과 자기 환멸 사이를 널뛰기하면서 바퀴벌레처럼 강인하게 생존을 이어가는 인간, 인간들” 그런데 ‘나’의 눈에 누군가가 클로즈업 되어 들어왔습니다. 마치 자살대교의 이름을 지켜주기 위해 강물로 뛰어들어야하는 의무감을 지닌 듯 그렇게 한 사람이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의 뇌 저장 파일을 뒤져 그의 이름을 찾아냈습니다. ‘김만수’ 그리고 그 역시 투명인간이었습니다. 투명인간은 서로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만수네 가족사(家族史)가 펼쳐집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특이한 것은 등장인물들
각자가 목소리를 낸다는 것입니다. 나만의 생각은 타인의 생각 속에서 그 빛깔이 달라집니다. 한 가지 사물이나 사건을 놓고도 각기 다른 생각이 노출됩니다. 식구들 간에도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그러니 사회 조직 속에선 오죽 하겠습니까.
6. 제목이 ‘투명인간’인지라 뭔가 알싸한 것을 기대하시는지요? 사실 나도 약간은 그랬습니다. 투명인간의 멋진 활동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방향이 다르네요. 재미없냐고요? 아니요. 재밌습니다. 다른 면으로 흥미롭습니다. 아니, 흥미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못하군요. 성석제님의 최근작인 「투명인간」을 읽다보니 요즘 내가 관심 작가로 보고 있는 옌롄커를 생각하게 됩니다.
7. 옌렌커는 『사서(四書)』에서 독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잊혀버린 역사와 죽었거나 살아 있는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투명인간」을 읽는 내내 이 문장이 오버랩되더군요. 살아 있는 지식인들. 나는 이 말을 다시 이렇게 풀이합니다. ‘선한 의식이 살아 있어야 지식인, 살아 있어야만 하는 지식인’.
8. 시대는 거슬러서 조선 중기까지 올라갑니다. 일정시대를 거칩니다. 6.25가 지나갑니다. 먹고 사는 것이 무엇보다 귀한 때를 거칩니다. 시장 통의 약장수들, 차력사가 등장했다 무대 뒤로 사라집니다. 아이들의 학교 앞엔 요즘 시각으론 불량식품의 대명사인 ‘쫀드기’도 나옵니다. ‘뽑기’도 있군요. 월남전. 아, 고엽제. 새마을운동. 혼분식운동. 마치 ‘대한 늬우스’를 보는 것 같지요? 작가는 이러한 부분들을 그저 터치하고 지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세밀화를 그리듯 정성을 다해 그리고 있습니다. 마치 중세시대 수도사들이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 성경을 번역하고 필사하고 기록하듯이 그렇게 지나간 시간들을 만수네 가족을 내세워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9. 작가는 무엇을 그리고 싶었을까요? 지나간 시절에 대한 기록? 잊힐까 염려되는 우리의 과거? 물론 그렇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것은 내 앞에 있는 거울이 아닙니다. 빛바랜 사진. 귀퉁이가 떨어져나간 앨범 속 흑백사진입니다. 그 모습에서 지금 나의 현주소와 미래를 찾아야합니다. 작가는 그런 마음으로 써내려갔다고 생각합니다.
10. 삶의 전반전을 지나 후반전을 열심히 뛰고 있는 세대들에겐 낯익은 빛과 향기가 떠오를 겁니다. 전반전을 뛰고 있는 세대들은 앞서의 게임이 어땠는지 ‘다시보기’를 하는 시간이 되겠고요. ‘투명인간’의 정체가 그려지시는지요?
“투명인간도 사람이고 투명인간이 되고 난 뒤에도 보통의 세상처럼 해도 되는 일, 안 되는 일의 한계가 있더라. 우리는 천사나 악마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냥 인간이다. 뭔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고 연대를 맺고 뭔가 바꾸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교통사고가 나기 직전에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것처럼.”
11. 아, 왜 자꾸 동부전선이 생각나는지요. 그리고 지금도 어느 곳엔가 있을 ‘투명인간’들의 존재감이 살아나길 간절히 기대합니다. 투명인간은 모두의 마음에서 지워져있지만, 투명인간은 모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당신의 시선이 평범한 눈빛으로 살아나길 무척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