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은 알키비아데스 지만지 희곡선집
게오르크 카이저 지음, 김충남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구원받은 알키비아데스게오르크 카이저 / 지만지

 

 

희곡입니다.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가 주인공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알겠는데 알키비아데스는 낯설지요? 나도 그렇습니다. 첫 막의 무대는 레슬링 학교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알키비아데스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아름다움과 힘의 이상(理想)입니다. 특히 아테네 소년들에게 존경받는 정치가이자 장군이지요. 레슬링 학교 교사는 아이들 앞에서 이런 말까지 하는군요. “알키비아데스만이 알키비아데스를 구할 수 있어...그렇지 않다면 그리스 하늘이 무너져 내릴거야!”

 

 

구원받을 일 없을 것이라는 알키비아데스와 그를 구원한 소크라테스

 

이 희곡의 스토리 줄기는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용감성과 사려 깊은 행동으로 아테네의 젊은 사령관인 알키비아데스를 구한 사건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뜻밖이지요? 철학자가 전쟁터에서 전사(戰士)를 구해냈다?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의 목숨만 구한 것이 아니라 그 후 그의 명예와 영혼까지도 구해냅니다. 어찌된 사연일까요?

 

 

가시또는 거룩한 부담감

 

선인장 들판과 언덕이 이어지는 전장(戰場)이 나타납니다. 쫓고 쫓깁니다. 한 쪽 군대가 열세입니다. 낙오병이 나오는군요. 지휘관은 어떻게든 그 병사를 끌고 가기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회유와 협박도 안 통합니다. 한 고집하는군요. 그 병사가 꼼짝을 안하는(못하는)이유는 강한 선인장가시가 구두를 통과해...피부를 뚫고....살을 찔렀기때문입니다. 적의 칼에 찔러 죽을 땐 죽더라도 꼼짝 못하겠다고 버티기 작전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병사가 바로 소크라테스입니다. 그 때 무기 없이 갑옷만 입은 알키비아데스가 나타납니다. 마침 적군이 나타납니다. 무기가 없는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 뒤에 숨습니다. 소크라테스 병사는 죽을힘을 다해 그 자리를 지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발에 가시가 박혀서 걸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알키비아데스가 구원을 받습니다. 좀 희극적인 상황이기도 합니다. 왜 하필 가시였을까? 때로 나 혼자 편하면 된다는 생각을 넘어 내가 편한 만큼 불편해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행동을 조신하게 한다면 바로 이것도 가시의 일종일 수도 있겠지요. 내 마음을 찔러주고 각성시켜주는 존재감이라고 봐야겠지요. ‘가시이야기 하다보면 이 밤이 다 샐 것 같아 이정도로 멈추렵니다.

 

 

소크라테스의 존재감

 

이 희곡에서 소크라테스의 존재감은 꼽추입니다. 또한 돌로 육체가 없는 머리를 조각하는 주상(柱像)조작가로 표현됩니다. 철학자답군요. , 다리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머리만 신경 씁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왔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발바닥에 박힌 가시를 못 뽑고 지내다보니 사상가가 됩니다. 알키비아데스에게 쏠렸던 아이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몰립니다. 소크라테스가 해주는 말을 통해 소년들은 영적으로 성숙하게 됩니다. 운동(레슬링)이 시시해집니다. 정신과 육체가 대립하게 됩니다. 그 당시 상황은 육체가 더욱 우세했지요. 시민의 자격은 전쟁이 일상화된 그 시절 전사(戰士)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어야했지요. 그러니 철학자들의 존재감은 미미했다고 봐야겠습니다. 철학자는 밥만 축내는 부류라는 빈정거림도 들리는 듯합니다. 그런데 상황이 역전 된 것입니다.

 

 

변화되는 양상

 

이 드라마의 막이 열릴 때 소년들은 신체 단련이라는 이상과 알키비아데스가 구현한 육체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지요. 그러나 이제 소크라테스의 영향으로 소년들은 철학적 대화를 높이 평가하게 됩니다. 격투기 연습대신 철학 문답에 열중합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소년들에게 비춰진 자신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소크라테스를 죽이겠다는 상황까지 갑니다. 그러나 실패로 끝납니다. 오히려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에서 한 수 배웁니다.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를 넘어뜨리기 위해 애쓰는군요.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

 

시간이 흐르면서 알키비아데스는 민족의 영웅에서 희대의 사기꾼이자 중범자로 몰립니다. 알키비아데스는 멀리 도망가고 발이 아파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소크라테스가 체포됩니다. 죄명은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를 구해줬고,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 철학의 추종자라는 것이지요. 웃기는 이야깁니다. 탐욕스럽고 멍청한 그 당시 지도자들, 원로들의 모습이 오버랩 됩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그는 독배를 마십니다.

 

 

작가 게오르크 카이저에 대해

 

작가는 이 작품 구원받은 알키비아데스를 육체와 정신 대립에 관한 대화극이자 사고극(思考劇)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고극이라 함은 단순히 구경하는 연극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연극을 관람해보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이야기하네요. 게오르크 카이저는 1878년 마그데부르크 태생입니다. 좀 튀는 성격이었군요. 교사와 교육과정에 대한 불만으로 김나지움을 중퇴한 후 3년간 상업 수업을 받습니다. 유랑의 시간을 보냈군요. 25세에 첫 작품으로 희비극 클라이스트 교장을 발표합니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작품들이 빛을 발합니다. 카이저의 작품 중 40편 이상이 세계 각국에서 초연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세계적 극작가로 떠오르게 됩니다. 카이저는 현재까지 가장 위대한 표현주의 극작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혼란스러울 정도로 소재와 극 형식이 다양하지만, 카이저의 전 작품 면면에 흐르는 일관된 주제는 새로운 인간과 그에 의한 인류와 세계의 개혁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이 희곡을 통해 소크라테스를 새롭게 만나게 되는군요. 정신과 육체는 분리가 불가능하지만, 몸과 마음의 부조화된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