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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까지는 가야 한다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육필시집
이기철 지음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월
평점 :
『 별까지는 가야 한다 』 이기철 / 지만지
1. “우리 삶이 먼 여정일지라도/ 걷고 걸어 마침내 하늘까지는 가야 한다/ 닳은 신발 끝에 노래를 달고/ 걷고 걸어 마침내 별까지는 가야 한다// 우리가 깃든 마을엔 잎새들 푸르고/ 꽃은 창찬하지 않아도 향기를 핀다/ 숲과 나무에 깃들인 삶들은/ 아무리 노래해도 목 쉬지 않는다/ 사람의 이름이 가슴으로 들어와/ 마침내 꽃이 되는 걸 아는데 / 나는 쉰 해를 보냈다/ 마음도 보듬으면 노래가 되는 걸/ 아는 데/ 나는 반생을 보냈다// 나는 너무 오래 햇볕을 만졌다/ 이제 햇볕을 뒤로 하고 어둠 속으로 걸어가/ 별을 만져야 한다/ 나뭇잎이 짜 늘인 그늘이 넓어/ 마침내 그것이 천국이 되는 것을/ 나는 이제 배워야 한다// 먼지의 세간들이 일어서는 골목을 지나/ 성사(聖事)가 치러지는 교회를 지나/ 빛이 쌓이는 사원을 지나/ 마침내 어둠을 밝히는 별까지는/ 나는 걸어서 가야 한다.” - ‘별까지는 가야 한다’ 전문(全文)
幽蘭不以無人息其香
‘그윽한 난초는(향을 맡아줄)사람이 없다하여 그 향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꽃은 칭찬하지 않아도 향기를 핀다는 시구를 보면서 떠오른 문장이다. 사람의 이름이 가슴으로 들어와 마침내 꽃이 된다는 부분이 참 좋다.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의 가슴에 들어가서 향기로 남는 이름, 존재가 되어야 제대로 살아가는 삶일 것이다.
2. 이 시집은 지만지(지식을 만드는 지식)에서 기획한 육필 시집 중 한 권이다. 지은이는 이기철 시인이다. 토속적인 서정시 속에 촌철살인 같은 시구가 눈에 띈다. 아울러 꿈과 희망, 사랑이 담겨 있다.
3. “신발을 벗지 않으면 건널 수 없는 내를/ 건어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 불과 열 집 안팎의 촌락은 봄이면/ 화사했다/ 복숭아꽃이 바람에 떨어져도 아무도 알은/ 체를 안했다/ 아쉽다든지 안타깝다든지,/ 양달에서는 작년처럼, 너무도 작년처럼/ 삭은 가랑잎을 뚫고 씀바귀 잎새가/ 새로 돋고/ 두엄 더미엔 자루가 부러진 쇠스랑 하나가/ 버려진 듯 꽂혀 있다/ 발을 닦으며 바라보면/ 모래는 모래대로 송아지는 송아지대로/ 모두 제 생각에만 골똘했다/ 바람도 그랬다” ‘고향’ 전문(全文)
내가 나로 나대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 도시라는 곳은, 인간이 몰려 있는 동네는 그렇다. 나보다는 남의 시선과 생각을 염두에 두고 바라보는 것이 일상화되어있다. 시인이 그려주는, 신발을 벗어야만 내를 건너야 땅을 밟는 그 마을엔 각기 조용히 제 생각에만 골똘하다. 지극히 정상이다. 우리도 그렇게 살다 가야 한다. 내 안에 생각을 뿌리고 키우고 그 향을 맡으며 살아가야 하리.
4. “이렇게 하늘이 푸르런 날은/ 너의 이름 부르기도 황홀하여라// 꽃같이 강물같이 아침 빛같이/ 멀린 듯 가까이서 다가오는 것// 이렇게 투명한 날은/ 너의 이름 쓰는 일도 황홀하여라” ‘푸른 날’ 전문(全文)
그렇다. 속절없이 푸르른 하늘을 보며 가슴이 저린 때가 종종 있다. 너무 맑아서 두렵고 서운한 적이 있다. 시인은 가슴 속에 담겨 있던 이름을 그 하늘에 쓰고 싶다가도 그저 하늘만 바라보다 만다. 내 마음도 그렇다.
5. 시인 이기철은 1943년 경남 거창 출생이다. 고2 때 〈아림예술상〉을 받고 시에 입문하여 대학 2년 때 전국대학생문예작품 현상 공모(경북대)에 당선한 뒤로 문학에 전념. 1972년 〈현대문학〉에 〈5월에 들른 고향〉 외 4편으로 등단하였다. 꽤 여러 권의 시집, 에세이집을 내고 비평서, 소설집, 학술서 등도 출간했다. 1980년부터 영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8년 정년, 현재 영남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