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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사냥꾼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장수미 옮김 / 단숨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거의 모든 살인자에게는 너무나도 합리적인 동기가 있다?
‘묻지마 살인’도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다. 노변 카페 앞에서 자폭함으로써 자기 민족의 불행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자살 테러범도, 아이들을 납치함으로써 아버지들을 깨우쳐주려는 미치광이도, 혹은 침묵을 지킨 피해자들을 가해자로 몰아 ‘처벌’했던 살인자도 스스로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범죄 심리학자는 이런 말도 했다. “살인을 함으로 상대의 생명력이 내게 전해진다는 망상과 착각에 잠겨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살인자들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여기며, 그것을 실행하는 순간에 아무런 죄책감도 못 느낀다.
제한 시간 45시간 7분
이 책의 전작인 ‘눈알수집가’의 정체는 베를린 유력 일간지의 수습기자 프랑크 라만으로 밝혀졌다. 라만은 모두 네 명의 여자와 세 명의 아이를 잔인하게 살해했음을 자백했다. 라만의 범행은 치밀하면서도 등골이 선뜻하다. 그는 먼저 어머니를 죽이고 아이를 납치한 후 아버지에게 45시간 7분의 제한 시간을 준다. 이 시한이 지나면 아이는 자동적으로 질식사하게 되어 있었다.
이미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었지만, 어린 시절 성장기에 겪었던 깊은 고통의 상처를 메우기 위해 도저히 이해 불가한 사건을 저지르기도 한다. 라만은 매우 극악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다. 그는 특히 암에 걸려 왼쪽 눈을 잃은 작은아들. 라만의 남동생을 짐스럽게 여겼다.
어느 날 형제는 아버지가 자신들을 걱정해 찾아 나설 것이라 믿으며 버려진 냉동고 속에 숨었다. 그러나 그렇게 바랐던 애정의 증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무것도 모른 채 술집을 돌아다니는 동안 스스로의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었던 형제는 냉동고 속에서 질식사와 싸웠다. 45시간 7분 뒤 벌목꾼이 그들을 발견 했을 때 프랑크 라만의 동생은 목숨이 이미 끊어진 후였다.
이어지는 살인 게임
쌍둥이 남매가 유괴 당했다. 그들을 구하는 사이에 프랑크 라만을 새로운 희생자를 찾았다. 초르바흐의 아들 율리안이었다. 그는 초르바흐의 부인 니키 초르바흐를 살해한 후 율리안을 납치했다. 라만은 종적을 감추었고 초르바흐에게 주어진 시간은 별로 없다,
소설의 첫 문장에서 벌써 스산한 기운이 느껴진다. “포근한 13도, 가볍게 구름 뜬 하늘, 부드러운 9월 바람, 요한나 슈트롬은 이 날씨를 사랑했다. 죽기 딱 좋았다.”
알렉산더 초르바흐
경찰청 출입 기자이다. 프랑크 라만을 쫓고 있다. 아들이 유괴되었다. 제한 시간을 7분이나 넘긴 지금. 그는 마취 중 각성을 겪은 한 여인이 생각났다.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은 그녀. 공간의 협소함을 못 견뎌내는 그 여인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동물원에서 눈이 부신 햇살을 받으며 젊은 여성의 악몽 같은 회고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하복부의 단순한 종양이었어요.” 수술의사는 당연히 마취가 된 줄 알고 개복수술을 시행했다. 그러나 그녀는 마취가 안 되었었다. 감각신경은 살아있고, 운동신경만 잠들어 있었다. 희귀한 경우이긴 하다. “우리에게 닥칠 위협이 그리 크지 않다고 안심하기 위해 아무리 통계놀음을 한다 해도, 늘 어느 누군가는 영 뒤에 소수점이 붙는 숫자에 해당하는 슬픈 경우를 맞이한다. 때로는 그 누군가가 우리 자신일 때도 있다.” 요즘의 상황과 맞물려 있는 느낌이다. 오늘처럼 이렇게 하늘이 밝기만 한데 그 바닷속은 얼마나 어둡고 음산할까.
알리나 그레고리예프
빛은 삶, 어둠은 죽음. 난해한 대목이지만 침묵을 지킨 피해자들을 가해자로 몰아 처벌하는 주커라는 미치광이도 등장한다. 그 희생자중 하나인 알리나 그레고리예프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명암을 구분한다. 시각장애인의 눈이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어둠 속에 벌거벗은 채 누워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추위를 느끼고 있었다. 발은 마비가 된 듯하다. 그 안에서 같은 처지로 납치, 구금되어있는 니콜라를 만나 함께 탈출할 생각을 한다. 미치광이 주커는 세계적인 안과의사로 그려진다. 니콜라의 멀쩡한 눈의 각막을 알리나의 눈에 이식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주커.
사이코 스릴러류의 작품이 주는 이점?
지은이가 한 말 이지만 한 심리학자가 최근에 빈에서 열린 낭독회(지은이의 저작물을 지은이가 낭독하는)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런 부류의 책을 읽지 않는 사람보다 ‘배출구가 없는 사람들, 다시 말해 스릴러를 읽지도 쓰지도 않고 모든 것을 속으로 꾹 눌러 참는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가 걱정해야 할 사람들’이란다. 글쎄올시다.
지은이 세바스티안 피체크는?
1971년 베를린 태생이다. “이런 끔찍한 책을 쓰다니, 어릴 때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라는 질문을 심심찮게 받지만, 그는 테니스 선수가 되고 싶었던 해맑은 어린아이였다. 부모의 요청에 따라 테니스를 포기하고 저작권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며 2006년부터 사이코스릴러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데뷔작 『테라피』는 2006년 7월에 출간되어 그해 독일을 휩쓴 『다빈치코드』를 제치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독일 스릴러상과 더불어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범죄소설상인 프리드리히 글라우저상 후보에 올랐다. 그 후 발표한 10여 개의 작품 역시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