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1.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60년 6월 15일에서 7월 15일까지 한 달간이다. 도쿄지방법원 형사 제30호 법정. 무라타 가즈히코라는 은퇴한 신극배우가 피고로 등장한다.

 

2. 피고 무라타 가즈히코는 두 건의 살인과 시체 유기라는 죄명을 쓰고 있다. 이 법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도요 신문 법정 기자로 법원에 출입하는 요네다 도모이치의 시각으로 그려진다.

 

3. 재판은 종종 연극에 비유하기도 한다. 각기 맡은 배역을 얼마나 멋지게 수행하느냐가 관건이다. 법정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대부분이 비극이지만, 이따금 희극도 되고 외설극이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강간 사건 재판이 열리면 건조하고 딱딱한 법률 용어의 표현이 어떤 면에서는 도색잡지보다 난잡하고 묘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는 표현도 등장한다.

 

4. 피고를 가운데 두고 노련하고 치밀한 중견 검사와 침착하면서도 지혜로운 젊은 변호사의 한 판 대결이다. 피고는 두 건의 살인과 사체 유기에 대한 죄가 목에 걸려 있다. 그러나 피고는 첫 번째 살인사건 후 시체 유기에 대한 부분만 인정할 뿐이다.

 

 

 

 

5. 출신성분. 법정 심리와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피고의 출신 성분이 드러나고 이슈화된다. 그는 이른바 신평민 출신이었다. 신평민(新平民). 이는 일본이 구 호적법을 제정하면서 화족, 무사, 평민과 함께 호적에 등재된 하나의 호칭이라고 한다. 신(新)이라는 글자 하나가 주는 무게감이 상당하다. 비록 법적으론 평등화되었다고 하지만 그네들이 사회에서 받는 차별과 불이익은 이루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깊은 골이 형성되어 있다. 실제로 피고가 군에서 5년 동안 복무 중 그의 출신 성분 때문에 진급을 못하고 온갖 고초를 당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6. 작가는 변호사의 입을 통해 민족 간, 인종간의 차별의식을 고발한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야기와 우리에게도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평소 학대받았던 조선인이 지진이 난 기회를 이용해 폭동을 일으킨다,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면서 아무 죄도 없는 재일 조선인2천600명~6천600명이 학살당했다.

 

7. 책의 제목으로 쓰인 《파계》는 시마자키 도손이라는 일본의 대문호의 역작에서 따왔다. 차별의식이 주제이다. 도손은 그의 작품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설령 어떤 꼴을 당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코 출신을 밝혀서는 안 된다. 한때의 비분에 이 금제를 잊는다면, 그때가 바로 사회에서 버림받는 순간이라 생각해라.’

 

8. 피고 무라타 가즈히코는 한 여인을 사랑했다. 야스코라는 유부녀였다. 한 때 신극에서 같이 활동을 했던 여인이다. 그녀는 무라타 가즈히코에겐 거의 여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의 출신 성분을 안 그의 아내조차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유산시키고 친정으로 가버린 가슴 아픈 기억이 남아 있을 때 야스코라는 여인은 그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야스코라는 여인을 위해선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를 할 정도다. 그러나 야스코라는 여인은. 이미 세상에 없다. 그러나 그가 야스코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어쨌든 그녀는 남편이 상해당한 후 철로에 던져졌고, 같은 장소에서 역시 살해 된 채로 발견되었다. 그 죄에 대한 모든 혐의는 무라카 가즈히코에게 돌려져있다.

 

9. 소설의 중반까지는 피고의 죄가 벗겨질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 화자이자 관찰자인 기자의 눈에는 무언가 기대를 걸었던 변호사의 파워가 좀체 상승되질 않다보니 답답하다.

 

10. 소설의 3분의 2정도 지났을 때쯤 급격한 반전이 찾아온다. 나른하던 참에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다. 책을 읽던 자세가 달라질 정도다. 국내에도 법정 소설을 쓰는 법조인이 있다. 간혹 비법조인이 쓰는 소설도 있지만, 아무래도 박진감, 치밀함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의학 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용어하나만 잘 못 써도 현장감이 여지없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법조계와 전혀 관계없는 일본의 한 작가가 오직 그가 공부한 자료로만 토대로 썼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다소 따분한 기분도 드는 전반전을 잘 넘기면 후반전에서 ‘읽을 만한 스토리’로 남겨지는 소설이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작가는 특별 변호사로 선임되어 실제 법정에 서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