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니체 - 고병권과 함께 니체의 <서광>을 읽다
고병권 지음, 노순택 사진 / 천년의상상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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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체의 삶은 드라마틱했고 그가 남긴 저작들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선과 악의 저편》과 《도덕의 계보학》에 흐르는 일관된 주제 역시 ‘고통’이다. 특히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에서 고통에 당당히 맞서서 힘에의 의지로 충만한 새로운 창조적 도덕의 원리를 제시하고자 했다.

 

2. 언더그라운드 철학자로 불리는 이 책의 저자 고병권은 니체의 저작중 《서광》을 중심으로 그의 생각을 풀어나가고 있다. 왜 《서광》이 선택되었을까? 그 이유는 저자의 새로운 문제의식 때문이라고 한다.

 

3. 저자는 2010년경 한 낱말에 ‘필’이 꽂혔다.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모든 근거들이 몰락하는 곳, 근거들의 근거 없음이 드러나는 곳. ‘언더그라운드’는 이제 철학자 고병권을 붙드는 고유한 개념이 되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언더그라운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 개념으로 ‘마르크스’를 공부하고 있다.

 

 

 

4. “언더그라운드는 내 안에서 여전히 자라고 있는 식물이다. 이 어린 식물을 벗 삼아 공부를 시작했다. 이 책은 이제 겨우 몇 걸음을 뗀 공부길의 표지이다. 내게 ‘강독’은 저명한 학자들처럼 원숙한 공부의 결과물이 아니라 공부를 시작하고 진행하는 방편이다. 《서광》은 내게 공부의 길을 보여주었다. 아직 아이는 없었다. 거기 서 있는 것은 임신부였고, 고독이었고, 침묵이었다. 그것은 철학자였다.”

 

5. 1장 ‘지하에서 작업하고 있는 사람’으로 시작해서 6장 ‘정신의 비행사’로 마무리된다. 지하에서 비행까지다. 저자는 《서광》을 읽기 시작하면서 책 제목을 하나 떠올렸다. 《니체와 철학》이다. 들뢰즈는 ‘니체의 철학’이 아니라 왜 ‘니체와 철학’이라고 했을까. ‘의’와 ‘와’가 주는 의미는 사뭇 다르다. ‘니체와 철학’이라는 말은 니체의 철학이 서로 ‘바깥’에 있으면서 동시에 ‘와’라는 접속사를 통해 연결된다. ‘니체의 철학’에서 느껴지는 ‘소유’와 ‘소속’의 의미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저자는 니체와 철학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긴 하나 서로의 소유물도 아니고 서로에게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6. 니체의 철학은 다양한 형태의 비(非)철학적 외관을 하고 있다는 표현에 공감한다. 니체는 어려서 예술, 특히 음악에 재능을 보였는데 열 살 때 다성(多聲)의 무반주 악곡인 모테토를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열다섯 편의 시를 쓰기도 했다. 자신이 열두 살 때 영광으로 가득한 신을 보았다고 적고 있다.

 

7. 《서광》에 국한시켜 니체를 이해할 때 철학자보다는 심리학자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도덕적 행동위에 숨겨진 심리적 책략, 꿈에 대한 분석, 자아와 그 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적 충동에 대한 분석.’등에서 그런 면모가 보인다.

 

 

8. 《서광》140절에 실린 다음 글은 니체가 언급했던 그 시기보다 더 강한 공감을 느낀다. “아주 많은 경우 우리는 이웃들에게 멋대로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 다닌다.” 좀 심한 표현이긴 하지만 나는 타인을 통해서 투영된 모습을 바라보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구절이다.

 

9. 저자가 《서광》을 텍스트로 삼았기에 함께 읽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니체의 다른 작품들을 중간 중간 소개한다. 니체를 아직 못 만나 본 독자도 대충 그(니체)의 이미지가 그려지도록 도와주고 있다.

 

10. 《서광》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나는 나 자신을 기다려야하지. 내 자아의 샘에서 물이 나올 때까지는 항상 시간이 걸리네. 그리고 자주 내가 인내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오래 갈증을 참아야만 하지. 이 때문에 나는 고독으로 들어간다네. 모든 사람을 위한 물통에서 물을 마시지 않기 위해.” 좀 더 깊은 사유는 골방에서 이뤄진다. 수 없는 말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진정 내 안에서 깊은 숙성 기간을 거친 말의 향기만이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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