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붓다의 십자가 - 전2권
김종록 지음 / 김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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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신앙(종교)이란 무엇인가? 종교가 없는 사람이 종교를 지닌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고, 그 반대이기도 하다. 종교가 다르면 삶의 전반적인 빛깔까지도 달라질 수 있기에 전쟁을 마다하지 않기도 한다. 한 종교를 이해하려면 편협의 마음을 버리고 그 종교가 어떤 과정을 통해 받아들여지고 성장했는지를 먼저 알아야한다. 이 점에서 인류는 많은 실수를 저질러왔다. 종교의 억압이 바로 그것이다. 억압과 금지를 구분한다면 억압은 더 나쁘다. 억압은 폭력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

 

"바람이 불었다. 몽골 초원에서 일어난 황색 칼바람이었다."  1231년, 그 칼바람은 동방의 찬란한 문명국 고려에도 휘몰아쳤다. 이듬해, 최씨 무인정권 천하의 고려 조정은 몽골 기마군단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바다 건너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거기서 무려 39년간이나 버티며 저항했다. 그사이 버려진 국토는 몽골군 말발굽에 처참히 유린당한다. 본토에 남겨진 생민들과 산천초목, 가축들이 적들의 소모품이 되어 시간을 벌어주었다.

 

1231년 대구 부인사 고려대장경판이 불탔다. 1011년에 새기기 시작하여 76년 만에 완성한 초조대장경이다. 전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의 와중에서 고려는 대장경을 다시 새기기로 한다. 강화도 선원사에 대장도감이 만들어지고 고려는 총력을 기울여 대대적인 판각불사를 벌인다. 1236년(고려 고종23)에 착수하여 1251년 무렵까지 이어진다. 이 국책사업의 결과물이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이 된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이다. 세계문화유산은 현 시대와 미래의 세대들에겐 한켠에 놓인 '소중한 존재'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만들기위해 애쓰고 노력한 이들의 수고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뒷짐 지고 그것을 지시한 사람에 대해선 별도로 이야기를 나눠야겠지만..


말염과 이서

 

불타버린 대장경판을 다시 새긴것을 점검하는 과정 중에 새롭게 나타난 글자와 그림이 있었다. 마구간에 갓난아기가 누워 있고 한 여인과 수염이 풍성한 사내들이 경배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이런 글자들이 세로로 새겨져있었다.  말염회후산일남명위이서 (末艶懷後産一男名爲移鼠). 여러 갈래의 해석끝에 내린 결론은 '마리아가 임신한 후에 사내아이 하나를 낳고 이서라고 이름지었다.' 불교의 진수를 새겨넣는 경판에 이상야릇한 그림과 문자는 줄지어 나타난다. 심지어 卍자의 네 귀퉁이가 떨어져나간 열十자 문양이 종종 눈에 띈다. 이 소설의 테마는 바로 이 十자의 정체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이 미션에 지밀(指密)이란 승려가 투입된다. 말염은 마리아이고, 이서는 예수다.


 

 

눈과 혀

 

꼭 그러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우리 몸의 일부가 상실되면 다른 기능이 좀 더 예민한 반응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지밀은 다시 만들어지는 경판에 이상한 그림과 글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해보기 위해 해인사 출신 고려 최고의 각수장이 김승을 만나러 남녘땅으로 간다. 그 와중에 돌풍을 만나 며칠 눈이 먼다. 그 며칠 상간에 많은 깨우침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 남녘땅 변산마을엔 몽골군에 끌려갔다 돌아온 신비의 환향녀 '여옥'이 있다. 어찌어찌한 사연으로 혀가 잘렸으나 복화술로 대화를 한다. 지밀은 경교(그리스도교)인들이 모여 사는 믿음의 공동체, 예배처에서 육신의 눈을 다시 뜬다. 경교도 여사제 여옥의 말이다. "복음은 세 치 혀로 전하는 전하는게 아니다. 나 아닌 다른 이에게 온몸과 정성으로 아낌없이 주는 사랑, 그것이 진정한 복음이니까. 세 치 혀로만 하는 신앙은 차라리 말을 않느니만 못하다."


 

밝혀지는 비밀 그리고 혼란스러움

 

진실이 밝혀질 때는 놀라움과 의구심이 함께 한다. 이제껏 알고 있던 사실이 허위라는 것은 주위 사람들을 찬찬히 다시 둘러보게 만든다.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나만 바보였구나.' 지밀은 경판조각이 한창인 그곳 마을에서 촌장격인 김승에게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초조대장경이 불에 탄 것은 몽골군들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부의 적과 계략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이다. 하나하나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지밀은 자신이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를 마음에 키우게 된다. 그가 걷고자 하는 길은 통합의 길이었다. 이기심과 탐욕에 흠뻑 빠져있는 불교와 이제 막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경교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지밀이 그곳 경교마을을 떠나 다시 강화로 복귀한 후 중국에 간 사이에 그곳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저자는 영성이 가득한 소녀 '가온'의 입을 빌려 이렇게 향기로운 말을 남겼다.

"우리가 몹시 미워하는 어떤 것이 있다고 쳐요. 우리는 그것만 사라져주면 그 순간 천국이 될 거라고 굳게 믿죠. 정말 그것이 사라지면 천국이 될까요? 문제는 저마다 사라지기를 바라는 게 제각각이라는 거예요. 어쩌면 자기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 간절히 사라지기를 바라는 대상일 수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거라도 그게 없다면 세상은 완전한 세상이 아니죠. 완전한 세상에서 그것 하나가 빠져버린 세상이 되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미워하는 것이 사라지기를 바라지 말고 아름답게 변하도록 도울 일이에요."

 

이 소설은 팩션이다. 사실에 스토리를 더한 것이다. 팔만대장경을 둘러싼 여러 인물과 사물의 행적과 현존은 많은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제 일 같다. 작가의 치밀한 추적과 구성력은 나를 고려시대 그 현장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말과 글, 행적 그리고 남긴 물건들은 후세대 그 어디쯤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를 일이다. 나 지나간 자리에 배떠난 자리처럼 아무런 흔적이 없던가, 꽃밭 사이로 난 조붓한 길처럼 향기로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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