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래가 바다로 간 것 만큼이나 호랑이가 바다로 갔다는 사실이 궁금점을 유발한다. 고래가 있을 곳은 바다이고, 호랑이가 있을 곳은 산이라는 당위성 때문이다. 그러나 한 생각 바꾸면 억겁의 시간 속에 바닷속 산과 들이 뭍이 되고, 하늘과 함께 호흡하던 산과 계곡들이 바닷물과 어우러져 지내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호랑이가 바다로 가는 것은 아마도 그 조상들의 DNA가 자극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실 그리고 내 안의 짐승 한 마리

"바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그에 따른 노동이 필요하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이 독자를 바다로 유혹한다.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바다를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바다에 뛰어들어 그 속살을 봤다고 해서 바다를 그릴 수가 없다. 바다의 얼굴은 변화무쌍하다. 산과 계곡을 돌풍이 핧고 지나가듯 바닷속도 그리하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 '나' 영빈은 지금 제주도에 있다. 원래는 물 위를 걷고 싶었으나, 그것이 여의치않아 우선 바다를 바닷속을 좀 더 알고 싶어 아예 당분간 제주에 머무를 생각이다. 굳이 고교 동창 산부인과 의사가 '양수와 바닷물의 성분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안해줬어도 그는 물이 참 좋다. 바다가 좋다.

 

영빈은 어느 날 실로 9년 만에 우연히 다시 만난 해연과 아파트 이웃에서 친구처럼 애인처럼 때로는 부부처럼(남들 보기에)지낸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저 쿨하다. 오래 전 그녀를 만났던 그때 사실 그에겐 '상실의 시대'였다. 해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9년전 그녀를 만난 곳은 성수대교위를 지나던 택시 안에서였다. 그가 먼저 타고 나중에 그녀가 합승을 했다. 성수대교가 붕괴되던 그날 두 사람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었다. 다행히 살아났기에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마도 그 때부터였을것이다. 붕괴되어가는 그의 삶과 무늬만 다리였는지 맥없이 강물로 떨어져내린 성수대교 그리고 부조리한 사회. 그는 해연에게 호랑이를 잡으러간다고 했다. 그는 종종 호랑이와 조우하곤 했다. 컴퓨터 내부에서 만난 적도 있다. "누구나 마음 속에 짐승을 한 마리씩 키우고 있지..평소에 잠든 척 얌전히 있다가 못마땅한 일이 생기면 돌연 거칠게 반응하지. 참고, 또 참고, 또 참다가 말이야. 그때부터 주인을 괴롭히는거야..."


 

경계인 또는 또 하나의 디아스포라

 

소설에는 일본인이 두 사람 등장한다. 두 여인이다. 그가 우연히 두 사람을 만났지만, 알고보니 두 사람이 여고 동창지간이다. 한 사람은 등단하고 한 사람은 아직이지만, 두 사람은 글을 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한국계 여성이다.

히데코라는 이름인 줄 알았지만, 아사카와 유미코라고 알게 된 여인과 사기사와 메구무라는 여인이다. 메구무라는 여인 역시 영빈은 우연히 스친 적이 있다. 한국계 여성으로서 일본에 살아간다는 깊은 어려움이 표현된다. 아, 그리고 나중에 두 여인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안타깝다. 작가는 이 두사람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불편한 관계가 여전히 현재와 미래의 진행형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어느 사회든 경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힘든일입니다. 작가뿐만 아니라 누구든 마찬가지죠.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경계인의 입장에 서면 흔히 회색분자나 기회주의자로 몰리게 마련이니까요. 가령 좌와 우가 있습니다. 어느 면에서는 좌가 옳고 우는 옳지 않습니다. 반대로 또 어느 면에서는 우가 옳고 좌는 옳지 않습니다. 균형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좌우의 장점을 택해 문제 해결에 적용시키려고 하죠. 그런데 그게 생각만큼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경계인이라 부르지 않고 양쪽에서 모두 기회주의자로 간주하니까요. 말하자면 양쪽에서 흔들어대는 거죠."


 

잡느냐, 벗어나느냐

 

낚시 소설은 아니지만, 제주도로 낚시를 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참고서적으로도 훌륭할 정도다. 꼭지에 이런 메모도 종종 붙는다. "물때 4물. 음력 2월 28일. 양력 4월 17일. 오전 간조시각 새벽 3시 29분. 만조시각 9시 52분. 더 없이 맑은 토요일 아침." 제주도는 물론 주변 섬들의  이곳 저곳 낚시 포인트와 물고기 이야기가 어류도감처럼 펼쳐진다.

 

 

트라우마 그리고 힐링, 다시 일어서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서적으로 근거리는 영빈과 해연의 가족 그리고 시간적으로 멀게는 일제시대부터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까지 이어진다. 영빈이 낚시 나선 길에 들르는 단골 국수집 아주머니는 제주 4.3 사태 피해자의 가족이다. 그녀는 외부 사람에게 매우 배타적이다. 그 상처는 여전히 아프다.

 

그러나 트라우마는 어떻게든 극복해야 한다. 그것에 잡혀 있다보면 한발도 못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문을 열고 닫는 것이 나의 의지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해연은 영빈이 잡아온 꽤 많은 고기를 욕조에 담가놓자 그 안에 들어가서 힐링 타임을 갖는다. 영빈은제주도에서 호랑이를 몇 번 만났다. 소설 끝무렵 영빈은 자신의 낚싯중에 걸린 꽤 큰 참돔과 돌돔을 그냥 바다로 다시 보내줬다. 잘한 일이었다. 해연의 뱃속에는 새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제주에 있던 영빈을 보러 내려왔던 해연과 최초로 신호교환(?)을 나눈 뒤 일어난 일이었다. 소우 쿨한 커플이 핫해질 것이다.

 

그리고 호랑이는 산으로 보내야 별일 없다. 무엇이든 있을 곳에 있으면 그 자체로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