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말 - 사회를 깨우고 사람을 응원하는
루쉰 지음, 허유영 옮김 / 예담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1. 중국의 역사 속에서 '계몽적 지식인'으로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던 세계적 대문호 루쉰(魯迅,1881~1936)은 중국 현대문학의 선구자이기도 하지만, 첸리췬과 왕후이 같은 저명한 학자들이 그를 통해 오늘날의 중국을 사유할 만큼 위대한 혁명가이자 사상가이다.

 

2. 우연한 각성의 계기로 의학대신 문학을 선택한 루쉰은 투쟁과 혁명의 길을 걸으면서 중국의 굵직한 현대사에 참여한다. 5.4 운동은 물론 중국의 현대혁명사와 문학사, 학술사, 사상사 또는 미술사를 논할 때도 루쉰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그가 남긴 흔적은 방대하다.

 

3. 루쉰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널리 읽혀진 『광인일기』와 『아Q정전』외에도 세 권의 소설집 『외침『방황『고사신편, 그리고 다수의 잡문집과 산문집이 전해진다. 이 책 『루쉰의 말』은 주로 잡문집과 지인에게 쓴 편지 등에서 인용했다고 한다.

 

4. 그는 어찌하다 의학에서 문학으로 급방향전환을 했을까. 이 터닝 포인트가 루쉰 사유의 원형질이 되므로 언급이 필요한 부분이다. 흥미로운 것은 동아시아 근대 지식인의 지적 행보가 대개 의학에서 출발하고 있다. 신해혁명을 이끈 손문(孫文)이 그랬고, 우리 근대사의 서재필이나 이승만 같은 인물이 그러했다.

 

5. 루쉰에게도 의학적 세계관 자체가 계몽운동의 지침이자 방법론이었다. 그런데 유학을 하던 센다이 의전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진다. 흔히 '환등기 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이기도 하다.

미생물학 시간이었다. 강의 시간중 환등기를 이용해 미생물의 형상을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시간이 남으면 선생은 풍경이나 시사에 관한 필름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곤 했다. 때는 바야흐로 러일전쟁 당시였다. 전쟁에 관한 필름들이 많았다. 한번은 화면상에서 중국인 무리를 보게 된다. 한 사람이 가운데 묶여 있고 허다한 무리들이 주변에 서 있다. 사진의 해설에 따르면, 묶여 있는 사람은 아라사(러시아)를 위해 군사기밀을 정탐한 자로, 일본군이 본보기 삼아 목을 칠참이라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 구름같이 몰려든 구경꾼들이 있었다. 동족이 처형되는 것을 무감각한 시선으로 구경하는 중국인 무리들이었다. 이 사진을 보고 루쉰은 분노와 치욕을 느낀다. 저들(구경꾼 중국인들)의 정신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문예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다.

 

6. "환멸은 대부분 거짓 속에서 진실을 발견할 때가 아니라, 진실 속에서 거짓을 발견할 때 찾아온다."  《삼한집》.  _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환멸의 시대이다. 진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거짓을 진실이라고 계속 우겨대는 무리들이 그 힘을 더욱 키워가고 있다.

 

7.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깼을 때 갈 길이 없는 것이다. 꿈을 꾸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하다. 아직 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를 꿈에서 깨우지 않는 것이다."  《무덤》. 월드컵의 열기가 대한민국을 휘감을 때 '꿈은 이루어진다' 역시 온 땅을 덮었다. 그러나, 그 꿈은 내 꿈이 아니었다. 공동체의 바람이었을 뿐이었다. 붉은 열기가 온 몸을 뒤덮어도 배고픈 사람은 여전히 배고프고,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로웠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 역시 여전히 백수 상태로 지내야만 하는 차갑고 고통스러운 현실. 그냥 꿈 속에서 헤매이게 둬야만 할까. 이미 그 꿈이 이뤄진 사람들은 자나깨나 행복하기만 한데, 그들이 이룬 꿈을 나눠줄 생각은 왜 못하고 있을까. 그네들 욕망의 꿈은 깨고 외롭고 힘든이들의 작은 소망들이 현실화되는 일을 간절히 희망한다.

 

8. "사람의 말과 행동은 낮과 밤, 태양 아래와 등불 밑에서 언제나 아주 다르다." 《준풍월담》.

_ 짧지만 가슴을 서늘하게 스치는 말이다. 혼자 있을 때 특히 생각과 행동을 삼가라는 말이 있다. 밤, 등불 밑은 딴짓 하기 좋은 때와 장소이다. 마음 속에 만용이 가득차면, 낮과 태양 아래에서도 하고 싶은 일 다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인간이라 불리워지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이 걸림이 없이 사는 사람이 진정 자유인이다.

 

9. "사람에게는 결핍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남강북조집

  _ 사족이 필요없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덧붙인다면, 결핍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소소하게 채워지는 일상에 감사하지만, 그 반대인 사람들은 내 소유에서 없어지는 것에만 마음을 두고 살아간다.


10. 루쉰은 암흑의 시대에 부엉이가 내는 불길한 소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 소리는 시대를 변화시키고자 호소하고, 경고하는 루쉰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루쉰이 이곳저곳에 남긴 아포리즘은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유효하다. 유효기간이 없다. 부엉이가 낮에도 울던가. 밤에 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깨어 있으라고 우는 것일 것이다. 아무리 칠흙같은 어둠이 이어져도 희망을 잃지 않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