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 한 인문학자의 섭치 정탐기
장유승 지음 / 글항아리 / 201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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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고를 때는 직감의 안테나가 작동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저자나 작가가 아니고 내용을 모를 때는 책 제목, 장정, 표지등에 시선을 줍니다. 이 책은 한 순간 내 안에 쏙 들어와버렸습니다. 책의 제목도 그렇고, 표지에 실린 책탑이 아련한 향수처럼, 그리움처럼 다가옵니다. 마치 나에게 읽혀졌던 책들을 다시 만난 듯 합니다. 


2. "제가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책들은 값을 매기기 어렵습니다. 얼마나 귀한 책이길래 값을 매기기 어렵냐구요? 아 ,그런 뜻이 아닙니다. 너무 흔하고, 또 너무나 보잘것 없어서 값을 매기기 어렵다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소개할 책들은 휴지 취급을 받는 '쓰레기 고서'입니다."


3. 아, 귀한 고서들이 쓰레기 취급 받는 세상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고서(古書)란 두말할 나위없이 오래된 책을 말하지요. 진작부터 인쇄술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옛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고서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지요. 고서를 읽으실 수 있는 분들이 한 분 두 분 떠나시고 나니 고서의 처지가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4. 쓰레기 취급을 받는 고서들이 그래도 불에 태워지지 않고 그나마 품위를 유지하며 변모하는 경우가 있답니다. 바로 지공예(紙工藝)하시는 분들이 이를 재활용하신답니다. 수제 한지인데다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어 좋은 '재료'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책을 낱장으로 해체하여 꼬고 자르고 다듬고 엮어서 '작품'을 만든다고 하네요.  작품으로 최후를 마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5. 저자는 그 스스로 "옛사람들이 남긴 글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규장각이나 장서각처럼 품격있게 대접 받고 있는 고서들도 많이 상대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쓰레기 고서를 잔뜩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팔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이 책들을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희귀한 고서가 들려주지 못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는군요. 그래서 이런 책들을 소개하는 글을 엮으며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이라고 지었답니다. '반란' 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그들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싶어할 것이라는 이유때문입니다.


6.  [쓰레기 고서]에서 건진 책들 치곤 대단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훌륭합니다. 이 책에서 다시 생명력이 얻어진 책들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에세이 형식으로 저자의 생각과 주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서 이야기라고 해서 고리타분하진 않다는 것이지요.


7. 반란을 일으킨 책들이 꽤 많군요. 중국의 고사성어를 분류하여 엮은 사전인[백미고사(白眉故事)]를 비롯해서 15권이 소개됩니다. 중간 중간 고서들의 사진이 실려 있어 내가 아는 한자가 있나 더듬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8. 나는 특히 '한문을 배우는 방법'과 '인문학을 한다는 것'이라는 챕터에 마음이 많이 머물러지더군요. 동양철학은 한문을 모르는 상태에선 더욱 다가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나마 대충 읽을 정도는 되지만, 늘 한문 공부를 해야 할텐데 마음 뿐입니다.


9. "고전을 공부하려면 한문을 알아야 합니다. 한문은 한자와는 다릅니다. 한자는 낱글자이고, 한문은 한자로 이루어진 문장입니다. 한자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그들이 모두 한문을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자는 한문을 외국어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체계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동감입니다. 이 챕터에선 사마광이 남긴 [자치통감]의 요약본인 [통감절요(通鑑節要)가 소개됩니다.


10. '인문학을 한다는 것' 챕터에선 논어(論語)가 등장하는군요. 저자는 인문학 열풍의 진원지는 기업이라고 합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인문학자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선언하면서 인문학 침체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 무차별적 시장 논리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이며, 그 주범은 다름 아닌 기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기업이 이제는 '인문학 프렌들리'를 자처하고 있다니 아이러니하다는 이야깁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까 고서들을 보는 안목도 살짝 높아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고서가 인쇄되는 과정등 주변의 이야기들을 접하게 됩니다. 쓰레기 더미 속 진주를 찾아서 고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게 만든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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