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지우고 남은 것들 - 몽골에서 보낸 어제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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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슬픈 일이다. 하루살이가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열정 때문이 아니란다. 분산돼 떨어지는 빛의 각도가 자꾸만 몸을 바로 세우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하루살이는 보다 크고 안정된 빛을 향해서 목숨이 소멸될 때까지 빛에게로 다가간다." 어찌 하루살이만 탓하랴. 욕망의 용광로에 금이라도 녹여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온 몸을 담그고 싶은 인간의 욕심은 어쩌랴.

 

2. 나에겐 [조드]의 저자로 남아있는 김형수 작가의 산문집이다. 우선 책의 제목부터가 몽골스럽다. [바람이 지우고 남은 것들]은 '바람이 지나고 남은 것들'보다 더 황망하다. 이런 표현이 좋다.

 

3. 몇 해 전 몽골에 한 번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우물쭈물하다가 그 기회를 놓쳤다. 언제 또 다시 그런 기회가 다시 올지. 헬기를 타고 물경 여섯 시간 동안 대평원을 날고 있었다는 표현으로 '넓긴 넓은가보다' 하는 마음을 지닐 뿐이다. "초원은 인간을 의롭게 만드는 곳이었다. 바다에서 표류하는 조난자의 마음처럼 모든 것을 애태워 그립게 하는 곳. 그래서 다들 지독한 고독의 냄새를 풍기는지 모르겠다."  아울러 초원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초원이 주는 그림은 심플하다못해 비어있다. 그 빈 공간에서도 생명력은 유지된다. 내 주변에 잡다한 물건들이 과연 내가 살아감에 없어선 안 될 품목들인가 돌아보게 된다.

 

4. "초원에서 인간에게 충동을 유발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필시 땅이 아니라 하늘일 것이다. 침묵하는 대지를 견딜 수 없어서 태양이 쏘아 보낸 그대로의 빛살이 내리꽂히는 자리마다 자연이 내뿜는 모든 원초성이 지상의 생명들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하늘을 닮아가고 싶어하던 남해안 바다가 생각난다.

 

5. "오늘날 지상의 모든 예술에서 드러나고 있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인간의 시야에서 대지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무슨 소리인가. 잠시 생각하다 공감의 끄덕임으로 화답한다. 이미 자연이라는 존재는 살아 숨쉬는 대지는 인간의 욕심과 편의성에 의해 덮여져 가고 있다. 놀고 있는 땅의 꼴을 못 본다. 그 대지는 그냥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끊임없이 생명력을 뿜어내고 인수 인계 하고 있지만, 인간의 눈에는 그저 어떻게 저걸 활용할까 그 궁리다.

 

6. 저자는 현재까지 몽골을 11번 방문했다. 그래도 갈 때마다 새롭다고 한다. 내 주변에도 몽골인들이 많다.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가 별로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임금 수준에 비하면 한없이 낮다. 아니 우리 임금이 좀 높은가? 한반도의 일곱 배에 이르는 거대한 대지가 더 큰 대지에 갇혀 있어 언제나 목이 마른 곳이 몽골이라고 한다. 물이 없으니 공장도 없고 공장 노동자도 없다. 노동력을 팔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돌아야 하는 것이 그들이 맞이하고 있는 현대의 풍경이다. 울란바트르 대학의 교수 한 사람이 한국을 다녀간 후 그랬단다. 그 무서운 곳. 삼면이 바다로 싸인 그곳에서 어떻게 사냐구. 그 교수는 오직 인천 앞바다만 보고 갔을 뿐이란다.

 

7. 후반부엔 소설 [조드]를 쓰기까지의 과정과 그 후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저자는 그의 역작 [조드]를 구상하기까지 상당히 멀고 복잡한 길을 걸었다. 저자가 처음 초원을 순례한 것은 1999년이다. 우연한 계기로 몽골 여행기를 신문에 기고하게 된다. 그 과정 중 '침략자의 나라'를 미화한다는 지적에 가슴이 미어진다. 그 답답한 편견을 어찌 깨뜨릴까 고민하다가 [조드]를 쓰기 시작했다.

 

8. "칭키스칸은 전쟁을 '정복 활동'이 아니라 '생존 활동'으로 이해했다. 그런데도 칭키스칸 시대 이후 지금까지 동과 서를 막론하고 모든 강국이 칭키스칸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왔다.(이건 무언가 이상한 현상이 아닌가 말이다). 어쨌든 이런 사실들을 내가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게 됐다는 점이다." 작가의 말이다.

 

9. [조드]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어린 테무진과 자무카의 조우 장면이다. 그다음에 테무진이 자무카와 헤어질 때 밤중에 동물 떼를 데리고 떠나가는 장면이다. 말이 앞장서고 그 뒤에 낙타가 따른다. 이동 중 잠깐씩 쉬어가기도 하는데 말들은 사람하고 비슷하다. 소나 양이나 염소는 애들처럼 오줌을 못 가리고 질질 싸며 가는데 말은 사람처럼 쉴 때 일을 처리한다. 휴식시간만 되면 사람과 말이 일제히 오줌을 싼다. 참았다가 쏟아내는 그 소리는 마치 폭포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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