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말을 걸다 - 외롭고 서툴고 고단한
신현림.신동환 지음 / MY(흐름출판)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1. 이미 오래 전 고인이 되신 나의 아버지, 아버님을 생각한다. 나의 세대는 아마도 아빠라는 호칭보다 아버지, 아버님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빠라는 호칭이 더 정겹고 살갑게 느껴진다. 아버지, 아버님이라는 표현은 스스로 그 분 앞에서 몸가짐을 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2. 그러나 호칭을 떠나 '아버지'라는 존재감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저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만 생각하고 계속 갈 뿐이다. 물론 가는 길에 본의 아니게 쉬기도 하고, 한숨도 쉬고, 화도 내보면서 그저 발길을 옮길 뿐이다.


3. 요즘 가장들의 자리가 없다는 이야길 많이 한다. 나의 자리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 그 자리라는 것이 누가 만들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제 위치를 찾고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4. 주변에서 흔히 목격하는 일이다. 몸과 마음을 이리저리 부딪히며 보낸 일상이 가정이라는 공간에 들어가서 휴식과 안정이 되고 회복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 상황이다 보니, 자연적으로 귀가가 늦어지게 된다. 때론 스스로 구실을 만들어서 집에 늦게 들어가기도 한다. 악순환이 계속 된다. 집안 공기가 산뜻할리가 없다.


5. 이 책은 이 땅의 아버지들을 위한 연가이다. 저자 신현림 시인은 이미 [엄마, 살아 계실 때 함께 할 것들]이라는 책을 펴냈었다. 저자는 엄마가 앞서 가시는 모습을 본 후 3년 즈음, 길을 가다가도 문득 엄마가 그리워 명치끝이 아파왔던 그 마음을 담아 이 땅에 사는 동안 엄마에게 미루지 말아야 할 것들을 서른 가지로 압축해 담았다고 한다.


6. 이 책은 그 후속편이다. 엄마에 대한 책이 많은 이들의 손과 마음에 담겨지자, 가슴 한 구석에 이 땅의 아버지들에 대해 빚을 진 느낌이었다고 한다. '세상의 아빠들은 어떻게들 살아가실까?'안부를 묻고 싶었다고 한다. 이제사 알게 된 것이지만, 저자는 모녀가장이다. 딸을 위해 아빠 엄마 두 역할을 모두 하는 삶을 산다. 그러다보니 살림보다 더 힘든 것이 밥벌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그만큼 성실한 가장들의 고단함과 애환이 가슴깊이 와 닿고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글에 대한 신뢰가 가는 부분이다. 그저 서정화나 추상화 같은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7. 책은 4부로 편성되어 있다. '아빠는 괜찮아?',  '시간은 빠르고 아빠는 늘 늦다'. '더 늦기 전에, 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아빠도 실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등이다.


8. 자신의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진정 어른이 못 된다는 말이 있다. 아버지 뿐이랴,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어르신들이 이 땅을 떠나셔야만 철이 드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나 역시 얼마 전 어머니 가시는 길을 보면서 참 죄송했다. 부끄러웠다. 


9. 저자는 혼자 된 아빠와 그녀의 딸 그렇게 셋이서 가족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여행 가기 싫다고 거절하는 부모님은 보통 자식들에게 민폐를 끼칠까 염려해서 그렇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어쨌든 여행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귀한 시간이 마련된다. 이 책은 자녀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이 땅에서 '아버지'란 역할을 맡고 있는 '아비'들이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자녀들의 마음 속에 어떤 이미지로 남겨질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10. 저자가 인용한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잔잔한 아픔으로 가슴에 남는다.

 "심한 화상으로 흉한 얼굴이 되어버린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끔찍한 모습으로 도저히 자식들을 돌볼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고아원에 맡겼다. 이후 그는 시골의 외딴 집에 살았고,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여 아버지를 원망하고 자랐다. 어느 날 그는 자식들이 보고 싶어 찾아갔다. 하지만 자식들은 흉한 모습의 아버지의 얼굴을 본 후 충격을 받고 그를 외면했다. 세월이 흘러 두 남매는 결혼을 했고, 아버지는 외딴 집에서 홀로 살다가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그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한 남매는 차마 그냥 지나칠수가 없어서 그 외딴 집을 찾는다. 문상 온 마을 노인 한 분이 남매를 맞으며 그 아비가 평소 버릇처럼 했던 말을 전했다. "내 죽으면 화장하지 말아줘요, 뒷산에 묻히고 싶어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집안에 화재가 났다.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나보다 아이들을 먼저 대피시키라고 하는 말에 정신 없이 아이들을 밖으로 내어놓고 다시 아내를 구하러 들어갔다가 아내는 구하지도 못하고 그만 불길에 휩싸이고 만 것이다. 그래서 그 아빠는 불이 너무 두렵고 싫기에 화장을 원치 않았던 것인데, 자식들은 산소를 만들어놓으면 명절 때마다 찾기 귀찮다고 그냥 화장을 해버린다. 뒤늦게 아버지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남매는 가슴을 치며 후회했지만 그 아버지는 삼십년 넘게 밤마다 불에 타는 악몽 뒤에도 불길에 휩싸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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