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번지 파란 무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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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 기억 속 도깨비들의 이미지는 이렇다. 우선 머리 위에 뿔이 하나 있다. 눈은 하나다. 키는 대체적으로 자그마하다. 상체는 벗었고, 아랫도리는 치마 아니면 반바지다. 어려서는 약간 무서운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귀엽다. 아, 뽀글뽀글 튀어나온 방망이를 하나 들었다.

 

2. 이 책의 주인공은 도깨비다. 100년을 살아왔다. 그의 몸엔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그가 존재한다. 그의 이름은 공윤후다. 있는 것 같으나 없는 것인 '공(空)', 있지만 없는 날인 '윤',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시간인 '후'. 그의 외모는 출중하다. 전형적인 도깨비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매력있다. 끌어당김이 있다.

 

3' 당연히 이 소설은 환타지 스토리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남긴 코드는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도 있다."이다. "너 좋을대로 해.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어서 인간인 거야. 혼자가 무서우면 둘을, 둘이 무서우면 혼자를 택하는 거야. 하나는 불행, 둘은 다행이라지만, 어느 쪽이든 거기엔 반드시 대가가 따르지."

 

4. 도깨비가 왜 이 땅에 나타났을까? 사람들 사이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걸까? 그는 마술사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살아가며 마술사의 그것처럼 마술같은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묘사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선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그저 기적처럼, 마술처럼 무언가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5. 산해음허(山海陰虛)의 기(氣), 초목토석(草木土石)의 정(精)이, 옮겨 물들고 섞여 합쳐져서 이매로 화하니, 사람도 아니고 귀(鬼)도 아니고 유(幽)도 아니고 명(明)도 아니나 또한 일물(一物)이다.  [해동잡록 권6]에 나오는 이야기다. 도깨비를 표현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면 도깨비에게도 역사와 전통이 있다.

 

6. [혹부리 영감]은 도깨비 스토리의 백미다. 처음 시작은 신경섬유종이 얼굴을 뒤덮고 있는 어느 불운의 여인을 행운으로 바꿔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딱 혹부리 영감이야기다. '활'이라고 있다. 윤후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다. 그가 중간 중간 공윤후를 설명해준다. '활'이 깨어난 것도 윤후의 영향이다. 우정국이 문을 열던 1884년, 윤후가 말을 거는 바람에 잠에서 깼단다. '활'은 윤후곁을 지키며 그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7. 사람은 눈으로 봐야만 믿는 존재이다. 아니 눈으로 보고도 안 믿는 경우도 있다. 내 눈에는 보이나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일 수도 있다. 그 반대일 경우도 있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전한다.  "늙어서 눈이 어두워지면 별수 없이 손과 코로 세상을 보고 거기에 내가 기억해둔 색을 입혀야 하지. 그러니까 눈이 밝을 때 부지런히 세상을 봐둬야 많은 색을 기억해둘 수 있단다."

 

8. 도깨비도 찾아갈 것이 있나보다. 사람만 무엇엔가 홀려서 사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 무언가를 찾으러 인간 세상에 왔다. 강제로 뺏어갈 수도 있지만, 조건을 내걸고 찾아가려 한다. 이 과정이 스토리의 전체적인 흐름을 리드하고 있다.

 

9. 다시 공(空) 이야기로 가본다. 사실 공은 비어 있는 것 같으나, 꽉 차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병이나 어항에 물이 꽉 차있으면 마치 비어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우리의 기억 어느 한 곳에서 자리잡고 있는 의식이 너무 꽉 차 있어서 존재감을 못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가 책 말미에 남긴 말이 오랜 잔상으로 남는다. "느림이 필요 할 때 지금 있는 시간과 장소 밖으로 눈을 돌려 오래 된 것들을 뒤적여봅니다. 내 머릿속 한구석에 묻혀 있는 오래된 것들도 꺼내봅니다. 그 안에서 진실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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