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늙어갈 것이다
카미유 드 페레티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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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업상 노인 어르신들을 많이 대한다. 나 역시 이젠 아이들이 할아버지라고 부를 정도가 되었다. (아이들 눈은 정확하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면 그냥 받아 들여야한다.나는 특히 머리 색깔 때문에 일찌감치 할아버지 소리를 듣긴 했다) 노인 어르신들을 보면 어렴풋이 나마 그분들이 걸어온 삶의 여정이 얼굴의 표정이나 몸과 마음의 불편함을 통해 전달된다.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들이 "갈데는 이제 한 군데 밖에 안 남았는데.."하시면 내가 웃으며 이렇게 답해드린다. "가시는 길은 아세요?".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인다. "그래도 어르신처럼 이렇게 병원에 오실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하게 받아 들이셔야지요.." 하면 대부분 수긍하신다. 진작부터 거동도 제대로 못하고 지내시는 분이 많기 때문이다.


2. 이 소설의 무대는 요양원이다. 작가 카미유 드 페레티는 1980년생이다. 아직 젊은 고운 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의 심리상태와 상황을 세심하게 그리고 있다. 역시 소설의 첫 문장을 옮겨본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여기, 로비 현관문 앞에 놓인 신발털개 위에서 이렇게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3.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은 좀 불편해도 정신이 맑다면 축복이다. 그렇지만, 정신이 맑지 못한 것도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단지 본인이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면이 안타까울뿐이다. 이럴 때, 정신이 맑지 못한 어르신들을 모셔야 하는 가족들의 입장은 참 난감하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된다. 이 소설에도 당연히 치매 노인들,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스토리가 이어진다.


4. 베고니아 요양원이라는 공동체는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사회이다. 요양원 주민들은 통과해야 할 마지막 문 하나만 남겨 놓은 상태이다. 60세부터 107세 노인까지 함께 생활한다. 작가는 어느 일요일 아침 아홉 시에 시작되어 정확히 다음 날 밤 열두시 사십오분에 이야기의 막을 내린다. 15분 간격으로 이동하고 있다.  요양원 이곳저곳의 모습과 내면의 움직임을 따라 가다보면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듯하다.


5. 이야기의 중심 속엔 전직 판사 니니와 이 소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카미유가 있다. 그들은 대모와 대녀 관계이다.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 중에 작가가 베고니아 요양원을 많이 방문하고 관찰한 것으로 짐작된다. 남편을 애인으로 착각하는 여인도 있다.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그 여인은 애인이 많았다. 남편에게 남편이 오기 전에 얼른 집을 나가라고 한다. 이런 말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들어야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참 안타깝다.


6. 전두 측두엽성 치매를 앓고 있는 드레퓌스 라는 노인은 자칭 '선장'이다. 그는 베고니아를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선박인 양 전두지휘한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요양원은 이 땅에 세워져 있으나, 세상과는 별도로 돌아가는 일상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분명히 세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반대로 세상 역시 베고니아라는 배에 영향 줄 것도 없다.


7. 자칭 드레퓌스 선장은 한 번도 배를 타본 적이 없다. 센강의 유람선을 제외하고는. 그는 파리 토박이다. 그는 무프타르 가에 있는 자신의 철물점을 평생 떠나본 적이 없다. 다행히 베고니아 승객들이 대부분 협조적이다. 그가 휘젓고 다니는 것은 하나의 이벤트다. 

이 글을 적다보니 여러 해전 지하철에서 비슷한 사람을 본 기억이 난다. 옷매무새가 깔끔한 60중반의 남자분이었다. 화창한 날이었음에도 검은 장우산(아마도 통신용 안테나로 활용하는 듯)을 지하철내에서 접었다 폈다 하더니, 드디어 액션!  어딘가로 작전 지시를 내린다. 열려 있지도 않은 폴더폰에 대고 좌표를 읊는다. 카운트 다운...발사. 그리곤 다음 칸으로 기세 좋게 이동하던 그 분. 지금도 어디선가 어딘가를 무수히 폭파하고 다닐 것 같다.


8. 이런 생각이 든다. 요양원 안이던 바깥이던 사람은 부대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이 싫다고 무인도에 가 있는들 마음이 편할까? 젊은이들 중에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고 있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도 종종 접한다. 베고니아에도 호감, 비호감이 존재하기에 당연히 갈등이 있다. 그러나 그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배에 타고 있으니, 하루에도 수없이 부딪힌다. 본인들은 별로 불편하진 않으나 바라보는 사람들만 마음이 편치 않을 뿐이다. 행여나 상태가 더 나빠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엔 웃음이 있고, 사랑도 있고, 작은 감동도 있다. 64장의 스냅 사진을 보듯이 그들의 축소된 삶을 들여다보면서 미래의 나를 본다. 나는 이 중 어떤 모습으로 남길 원하는가.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가게 되는 과정이기에 더욱 마음에 진한 이미지로 남겨진다.


9. 작가의 관찰력과 표현력에 더해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의 롤 모델인듯한 조르주 페렉의 [인생 사용법]에서 썼던 구성 기법이 적용된다.  1) 행마법(체스판 위에서 '기사'가 각각의 칸을 단 한 번만 지나가는 것)을 이용하여 방들의 묘사 순서를 결정하는 것.  2) 목록들과 요소들을 형식상 규칙적인 방식으로 각 장들에 배분하기 위해 10행 정사형 라틴 사각형 이론을 이용하는 것.  3) 목록과 각 목록의 요소들을 정하는 것.  

소설 내용에 시큰둥하다면 구성력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느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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