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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럴 땐 이렇게 - 분야별, 상황별, 주제별 영어 번역 강의
조원미 지음 / 이다새(부키) / 2013년 6월
평점 :
1. "서평은 많을 수록 좋다". "가치있는 책의 번역은 많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번역이라는 과정은 인간의 특별한 수고를 필요로 한다. 인류 최초의 번역은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 귀족들의 묘비에 두 개 언어로 동시에 새겨진 비명(碑名)이라고 알려져있다.
2. 번역에 대한 아포리즘도 많다. "번역은 반역(反逆)이다"라는 말에서 시작해 "번역이란 거꾸로 뒤집어 놓은 양탄자 같을 것이다 - 세르반테스", "번역이란 사생결단의 결투로 거기서는 번역되는자 아니면 번역하는 자 둘 중 하나가 죽게 되어 있다 - 슐레겔" 같은 살벌한 말도 있고, "번역으로 인하여 작품의 흠은 늘어나고 아름다움은 훼손된다. - 볼테르" 는 비교적 온건한 표현도 있다.
3. 이 책은 오랜 기간 통번역 분야에서 꾸준한 길을 걸어 온 저자 조원미의 치열함이 묻어 있는 글들이다. 우선 영어와 한국의 구조적 차이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 다음 영어식 표현과 구성에서 벗어나 우리말 표현을 구사하는 방법 그리고 정치, 경제, 문학, 과학, 예술, 정보통신, 기타 분야의 번역 강의를 통해 좋은 번역의 세계로 이끌어주고 있다.
4. '풍부한 표현력이 충실한 번역을 만든다는 말'은 충분히 수긍이 가는 말이다. 저자가 학생들에게 번역을 잘하려면 표현력이 필요한데 이를 기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다. 독서 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독서를 통해 표현력을 기르는 것은 어느 정도 독서를 통한 내공이 쌓이기 전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In put 만큼 out put 하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래서 이런 말을 해주고 있다. "좋은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부터 '주변의 모든 것이 공부다'라는 생각을 해야한다." 책이나 영화를 보던, TV에서 예능 프로를 보던 간에 내게 감동을 주는 글귀가 있으면 잘 기억해두고 있다가 활용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있다.
5. 영한 번역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 중에 하나가 초등학생도 알 만한 쉬운 단어의 번역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Be independent."를 직역하면 '독립적이 되어라.'가 되지만, 어딘가 어색하고 생명력이 없다. 저자는 이를 '알아서 하세요.'라고 번역하는 것이 그 의미를 훨씬 더 잘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쉬운 단어임에도 적당한 우리말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우리가 영한사전에 수록된 하나의 뜻만 떠올리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럴 때는 '영영사전'을 참고하길 권유한다.
6. 전문 번역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주는 조언이 있다. "번역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전반적인 배경지식입니다. 지식과 정보 제공은 기본적으로 저자의 몫이지만 번역사는 지식과 정보의 올바른 전달을 위해 자신이 먼저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배경지식입니다."
7. 굳이 번역사의 영역까지 안 가더라도 나는 리뷰를 쓰면서 애매모호한 표현은 자제하는 편이다. 단어하나를 쓰더라도 내가 확실히 알고, 설명해줄 수 있는 단어를 쓴다. 공연히 많이 아는 척 어려운 말을 집어넣고 누군가 내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볼 때 우물쭈물할 것 같은 단어는 아예 쓰지 않는다. 그냥 쉬운 말을 쓴다.
8. 학생들이 자신의 번역에 왜 그렇게 오역이 많은지 모르겠다고 탄식하는 소리가 종종 들린다고 한다. 저자는 가장 큰 이유는 원문 분석 시간이 짧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문을 여러 번 읽으면서 전반적인 의미를 먼저 파악하길 원하고 있다. 의미 파악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왜'라는 질문과 함께 앞뒤를 계속 반복하여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9. 여러 분야의 강의 중 문학 분야 글 번역에서 주의해야 할 표현에 시선이 머문다. 번역된 문학 작품을 읽다보면 활자는 우리말인데 선뜻 그 의미가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겪게 되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의 번역은 역시 표현력이다. 독자가 한국 소설을 읽듯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번역 작품을 만나는 것도 읽는이의 복이다. 몇 가지 번역의 예를 옮겨본다.
- It is a powerful story.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다.)
- There will be nothing that can be done about it. (속수무책이다.)
- He makes the first move. (그는 솔선수범형이다. / 그는 앞장을 선다.)
- He caused unnecessary fear. (그는 사람들을 괜히 불안하게 만든다.)
- Her beauty is hard to miss. (눈에 띄는 외모다.)
10. 이 책은 번역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 강의를 정리한 책이다. 책 중간에 '번역 학습에 유용한 인터넷 사이트'를 소개하고 있다. 부록으론 저자가 강의를 하던 중 학생들에게 받은 질문 중 다른 학생들에게도 유익한 질문을 추려서 정리했다. 비록 번역사의 꿈까지는 아니지만 보다 좋은 번역을 꿈꾸고자 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정보와 공부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세르반테스가 한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거꾸로 뒤집어 놓은 양탄자'처럼 모든 무늬는 다 있지만 본래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없는 번역의 운명처럼 뒤집어 놓는 번역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가짐으로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