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힘 - 말없이 사람을 움직인다
아가와 사와코 지음, 정미애 옮김 / 흐름출판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1. 언어학에선 듣기가 우선이다. 듣는 귀가 있어야, 말하는 입이 트인다. 외국어영역에서 '듣기평가'에 비중을 두는 이유는 타당하다. 한 동안 '모모'가 유명세를 탔다. 잘 들어줬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이야기가 더 있다. 대화를 잘 이끌어가기 위해서 잘 '들어야'한다. 그러나, 요즘 사회적 분위기는 듣는 귀보다 말하는 입이 더 많다. 그러다보니 대화가 겉돌고, 관계가 서먹해진다. 스마트 폰의 공헌 역시 지대하다. 카톡이나 문자로 날리는 대화는 체온이 없다. 아무리 이모티콘으로 전후좌우 치장을 해도 면대면 대화와 비교하는 것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2. 이 책은 '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 아가와 사와코는 여러 직업을 갖고 있지만, 그 중 전문 인터뷰어 생활을 오랫동안 해왔다. 좌충우돌하며 지나온 길에서 얻은 '듣는 지혜'를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저자는 말을 배우는 데는 3년이면 충분했지만 말을 듣는 것을 배우는 데 20년이 걸렸다고 털어놓는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3. 저자의 역할이 인터뷰어지만, 우리는 누구나 인터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표현에 공감한다. 굳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대화 자체가 자연스럽게 서로 위치를 바꿔가는 것 뿐이다.


4. 초보 인터뷰어는 아마도 A4 용지 가득히 질문을 적어서 순서대로 질문을 하며 인터뷰이도 그렇게 협조를 잘 해줄것이라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훈련이 잘 안된 인터뷰어를 만난 인터뷰이는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혼란스럽고 짜증날 수도 있다. 실제로 인터뷰이가 "이제 그만 합시다!"하면서 인터뷰를 마친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가하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진행해나가면서 평소 입으로는 표현을 안 했던 속깊은 이야기까지 꺼내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5. "인터뷰할 때 질문은 하나만 준비하라"는 부분은 앞서 준비한 인터뷰어에겐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지만, 질문을 하고 답을 성실하게 잘 듣다보면 그 답속에 다음 질문이 떠오른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우리의 대화에서도 그런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든다. 물론 A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B로 건너 뛸수는 있겠지만, 그리 멀리 가지 않는 것이 서로 마음의 교감이 이뤄지는 시간이 될 것이다.


6. 살아가며 우리는 서로에게 조언도 해줘야겠지만, 조언 이전에 잘 들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례가 있다. 저자가 임상심리학자를 인터뷰하면서 들은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저자가 물었다. "환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시나요?". "조언은 일절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환자의 얘기를 들어줄 뿐입니다. 왜 조언을 해주지 않느냐는 질문에 임상심리학자가 답한다. 언젠가 어느 젊은이의 고민을 듣고 조언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젊은이는 조언을 받아들여 실행에 옮겼고,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인사를 왔었다. 그런데 얼마 뒤 그가 다시 찾아와선 마구 화를 냈다고 한다. "선생님 말씀대로 했다가 일이 더 엉망이 됐어요! 어떻게 책임지실거죠?"


7. 나의 경험으로 종종 주위 사람들에게 상담이나 조언을 요청받는 일이 있다. "나에게 고민이 있습니다!"라는 이야기로 시작되진 않지만, 대화를 나누다보면 고민거리를 털어놓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사실 상대방은 이미 마음 속으로 방향을 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 속에 답이 있다. 그것을 감지해내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만 이야기하다보면 분위기가 썰렁해질 수도 있다. 상대방은 이미 대충 또는 확실하게 마음 결정을 내린 상태에서 '확인'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뿐이다. 그래서 조언이 어렵다. 신중해야 한다.


8. 사람은 말하는 속도가 각기 다르다. 속사포처럼 빠른 사람이 있고, 거북이가 기어가듯이 천천히 하는 사람도 있다. 가다가 멈추기도 한다. 상대방이 말을 천천히 한다고 급한 내 성격으로 마구 앞질러가면 상대방의 입과 마음이 닫힌다. 저자 역시 이런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이 사람은 천천히 생각하고 있다. 그 페이스를 흐트러뜨리기 보다는 조용히 기다리자.'


9. 대화는 모노드라마가 아니다. 들으며 이야기를 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대화는 듣지는 않고, 말하는데만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듣는 역할'을 생각해보는 책읽기였다. 


10. 올리버 웬델 홈즈가 남긴 이 말이 이 책의 내용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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